시골의 겨울은 추웠다. 집도, 학교도 모두 추웠다. 겨울방학이 되기전 12월은 정말 추웠다. 그런 계절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서 먹는다는 것은 어린 아이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중학교에 다닐때는 교실에 난로가 있어서 4교시에 도시락을 난로위에 올려두었다가 먹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시절엔 그럴 꿈을 꾸지도 못했다.
그 무렵 학교정문 앞에 있던 두 문방구 중 아랫집에서 “팥죽”을 팔기 시작했다. 사실은 그 집은 다른 학교의 교장선생님댁(전에 우리학교의 교장도 하셨었다)이었다. 그러니깐 교장선생님 사모님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셈이다. 그런데 그 집에서 팥죽을 팔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동글동글하거나 칼국수 형태로 만든 팥죽이 아니라, 그냥 손수제비처럼 팥국물에 밀가루반죽을 대충 손으로 떼어서 만든 그런 팥죽이었다.
추운겨울 꽁꽁얼어버린 찬밥을 먹는 것 보다 팥죽 한그릇을 사먹는 일은 아이들에겐 행복 그 자체였을 것이다. 처음엔 몇몇 학생들만 팥죽을 사먹었는데, 점점 팥죽을 사먹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한그릇에 얼마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되는 돈은 아니었겠지만, 당시에는 용돈을 받아서 쓰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학용품을 사겠다고 돈을 타와서 사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문제들이 발생하고 말았다.
계속해서 학용품이 필요하다고 돈을 타내는 일 때문에 몇몇 부모들이 학교에 연락을 했고, 그것 때문에 학생지도 선생님이셨던 윤시평 선생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고 그 일로 그날바로 팥죽을 한번이라도 먹은 학생들을 불러내서 체벌을 하셨다. 체벌은 학교 운동장 주변에 있는 트랙(운동장이 조금 낮고 주변에 트랙이 있었다)을 돌게 했다.
그 트랙을 돌던 아이들로 하여금 앞쪽 아이들은 “팥죽!”이라고 구령하면, 뒷쪽 아이들이 “먹었다!”라고 구령을 하도록 했다. “팥죽” “먹었다”를 반복적으로 구령하며 트랙을 도는 아이들은 온 학교의 교사들과 선생님들이 쳐다보니 창피해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채 트랙을 돌고 있었다. 구령소리가 작아지면 더욱 크게 구령하도록 선생님이 명령하셨다. 그 선생님은 호랑이 선생님이셨다.
그 아이들 중 우리집 둘째 딸인 작은 누나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팥죽을 먹었다가 딱 걸려든 것이다. 그 사건은 누나를 놀리는 좋은 무기가 되기도 했다. 누나는 그 사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사건이후에 팥죽은 더 이상 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