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25] 침을 두번 뱉은 기준이.

By | 2014년 9월 16일

우리집에서 병식(가명)이네 집을 오른쪽으로 돌아 작은 길로 가면 기준이네 집이다. 기준이는 나보다 한살 많은 동네형이다. 홀어머니 밑에 남자형제들이 많은 집이다. 형제들 중 내가 기억하는 이는 이준과 기준이다. 이준이형은 아마도 큰 형이었던지 이준이 아저씨라고 불렀다. 정미소에서 일을 했었다.

기준이네는 내가 늘 들락거리는 곳이다. 우리집에 음식이 있으면 늘 가져다 주곤 했다. 기준이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우리집에서는 잘 챙겼었던 것 같다. 수제비나 백숙을 끓이면 꼭 기준이네 엄마에게 전달해야 했고, 또 기준이와 자주 놀곤 했다. 놀다가 배가 고프면 우리집이나 기준이네 집에 가서 밥을 먹기도 했다. 주로 간장에 밥을 비벼 먹었는데 우리집에서는 참기름을 넣었는데, 기준이네 집에서는 들기름을 넣었다. 참기름은 더 고소하긴 한데 지금 생각해 보니 들기름이 건강에는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느날 기준이와 놀다가 기준이나 나를 놀리며 화나게 만들었다. 씩씩거리며 도망가는 기준이를 쫓아서 기준이네 집까지 갔다. 그런데 기준이가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가 버렸다. 그때 기준이네 집은 초가집(대부분의 집이 초가집이었다)이었고, 마루에서 바로 안방으로 들어가는 그런 구조였다. 방으로 들어간 기준이를 보기 위해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 창호지에 구멍을 냈다. 그리고 한쪽을 눈을 들이대고 방안을 보려고 했다.

순간 기준이가 침을 뱉었다. 기준이의 침이 내 한쪽 눈에 쏟아졌다. 입술이 두툽했던 기준이는 침이 많이 나왔다. 더욱더 열받은 나는 ‘나도 침을 뱉어야지’하면서 입을 갖다 댔다. 그냥 방안에 침을 뱉을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 다시 기준이 침을 뱉었다. 그 침이 내 입으로 고스란이 들어왔다.

마당에 침을 바로 뱉었지만 그 찜짐함은 상당히 오래갔다. 지금도 생각하면 찜찜한 일이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과 같은 그릇에 숫가락을 넣지 못하는 아이였다(물론 그것이 대학생활 이후에 깨져서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그런데 기준이의 침이 내 입으로 들어왔으니 얼마나 반복적으로 침을 뱉고 입안을 물로 행구고 씻고 했겠는가?

이 후에 어떻게 살고 있는 알 길은 없지만, 기준이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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