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36] 세종이 아저씨

By | 2014년 9월 18일

세종이 아저씨내가 사는 시골에 간혹 나타나는 아저씨가 있었다. 가수 조용남씨가 쓰는 것과 같은 뿔테안경에(실은 얼굴도 비슷한 느낌이다), 베레모와 비슷한 헌팅캡, 그리고 조끼를 입은 호탕한 아저씨였다. 간혹 시골에 오시면 어린 우리들에게 과자를 사주곤 했다. 우리 아버지를 “형님”이라고 호칭했지만 대화를 할 때면 거의 친구에게 대하는 듯 하였다. 어머니에게는 “형수님, 형수님”하며 잘 대해주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간혹 술이 취하면 자신이 일하는 클럽(나이트클럽이 아니었을까?)에서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무용담”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곤 했다.  물론 어린이들이 들으면 안될 그런 내용도 있긴 했다. 그에게 부인이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늘 혼자서 시골에 오곤 했다.

그는 늘 호기에 찬 모습으로 시골에 나타났다. 그러던 그가 언젠가 풀이 죽은 모습으로 나타났다(그 시점은 기억이 없다. 아마도 내가 중학교에나 다닐 때 쯤일까?). 소문에 그는 병이 들어서 낙향했다는 것이다. 전에 보여주었던 호탕함이 사라지고, 밀집모자에 목에 수건을 두르고 삽을 들고 논으로 걸어가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의 몸이 어디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를 볼 때면 늘 반갑게 맞아주곤 하셨다. 옛날처럼 과자를 듬뿍 사주시지는 않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귀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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