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은 한가위 보름보다 더 밝은 느낌이다. 아마도 추운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월대보름이 오긴 보름(2주)전에 맞이하는 섣달그믐은 그만큰 더 어두운 겨울밤이다. 밝은 설날을 맞이하기위한 깊고 어두운 밤일 수도 있다. .
설날이 다가오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들뜬다. 당시에는 더욱 그랬다.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으리라. 아이들도 설날 며칠 전부터 들떠있다. 추운 겨울밤이지만 아이들은 밤에 밖에 나와서 논다. 어른들은 음식장만하느라 분주하지만 아이들이야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긴 겨울밤, TV도 없던 시절 그렇게 밖에서 뛰노는 것이 아이들에겐 유일한 여가활동이었으니 말이다.
그믐에는 밤이 어둡기 때문에 주로 숨박꼭질, 얼음땡 놀이를 하며 놀았다. 한 곳에 모여 놀고 있으면 동네의 형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이렇게 외친다. “애들아! 차가 논에 빠졌어!”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논에 빠진 차를 보기 위해 우르르 몰려간다.20여미터를 달렸을까? 달리던 아이들 중 7, 8명이 우르르 넘어진다. 발에 무언가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새끼줄이다. 길가의 양쪽 가로수에 발목보다 조금 높에 묶어 놓은 새끼줄에 모두 발이 걸려 넘어진 것이다.
조금 큰 아이들의 장난이다. 장난치고는 고약하다. 아이들이 많이 다친다. 골절상은 아니더라도 손바닥이나 손등, 팔꿈치, 무릎에 부당을 입는다. 아이들은 체중이 가볍기 때문에 큰 부상은 아지만 울면서 집에 가는 아이들이 생긴다. 섣달 그믐에 신나게 놀던 아이들의 흥이 깨지는 순간이다.
당시에는 정기버스가 하루에 세번(진도읍과 녹진항을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다니고, 나머지는 택시나 트럭, 관용차 이외에는 차들이 없었다. 그러니 차를 보는 일은 신기한 일인데, 논에 차가 빠져 있다니 아이들로선 좋은 구경거리인 셈이다. 당시에는 버스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었다. 버스기사도 화답으로 손을 흔들었다. 비포장도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는 차를 무서워했다. 차가 오면 길가에서 비해 논두렁으로 걸었다. 먼지가 일어나는 것이 가장 싫었고, 차가 굉음을 내며 가까이 오는 것도 싫었다. 등교길은 신작로를 약 1km 정도를 걸어야 한다. 가다가 차라도 마주치면 먼지 때문에 여간 고역스럽다. 가을이 되여 벼가 무르익으면 그 위에 차가 일으킨 먼지가 그 위에 쌓이곤 한다. 그 먼지를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마신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아무튼 섣달 그믐이 되면 새끼줄에 걸려 넘어졌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러나 그건 당시에나 통할 법한 장난이다. 오늘날 그런 장난을 했다간 경찰에 신고를 당할 것이다. 동네의 아이들은 그렇게 함께 어울리며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