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56] 문태아저씨

By | 2014년 9월 20일

담장을 뛰어넘는 도둑 20150301우리집은 두번 집을 지었다. 원래 있던 초가집을 헐고 그 자리에 새 집을 지었던 것과, 그 새집이 접도구역안에 지어졌다고 강제철거를 당한 후에 다시 금골리에 그대로 옮겨 지은 것을 포함해 모두 두 번이다. 처음 지을 때인지 아니면 두번 째 지을 때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그 때 일하던 목수 중에 이름이 “문태”인 아저씨가 있었다. 우리는 그를 잘 따랐고 “문태아저씨”라고 불렀다.

문태아저씨는 아이들을 좋아했고, 어린 눈으로 보아도 선하게 생긴 분이다. 입이 한쪽으로 약간 돌아가긴 했지만 늘 선한 얼굴로 우리에게 잘 해 주셨다. 당시에 목수일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농사철에는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 목수일을 하셨다. 우리집을 지을 때도 그 분이 일을 하셨는데, 당시에는 점심이나 저녁을 우리집에서 해결했다. 문태아저씨는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식사를 하면서 뭔가 떨어져 있으면 “문대~불어!”(‘문질러 버려’의 진도식 사투리. 거기에 이름이 ‘문태’이니 비슷한 ‘문대’를 가져다가 웃으개소리를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등 가끔 농담도 하셨다.

그렇게 집을 짓고 있던 어느날 밤이었다. 우리집에 도둑이 들었다. 부엌문(안방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작은 문. 어린 나도 머리를 숙여야 할 높이인데, 부엌바닥이 방보다 낮아 부엌에서 밥상을 들이기 좋은 구조이다)이 덜컹거렸다. 아버지께서 잠결에 “대심이냐?”라고 묻자, 부엌에서 “네~”라는 대답과 함께 부엌문이 열렸다(당시에 우리집에서 일을 도와주던 6촌 누나의 이름이 ‘대심”이었다). 그 문고리는 숟가락을 걸어놓지 않으면 밖에서 계속해서 흔들거리면 빠지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잠결에 안방으로 들어오는 그림자가 대심이 누나가 아닌 남자라는 느낌이 들자, 아버지가 “누구냐!”를 외치며 일어나셨다. 순간, 도둑은 들어왔던 문을 통해 달아났고, 아버지는 그 뒤를 쫓으셨다. 뒷 텃밭으로 도망가던 도둑은 당시 탱자나무 담장을 뛰어넘어 달아났다. 사실 그 탱자나무 담장은 그냥 뛰어 넘을 수 없는 높이였다.

그날 새벽은 달이 훤히 떠있었다. 아버지는 달빛에 비추인 도둑을 보셨다. 다음날 부터 문태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집을 짓고 있었는데 목수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며칠을 고민하던 아버지는 그를 찾아 나섰다. 논에서 쟁기질을 하고 있던 그를 만나 한마디하셨다. “자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집을 계속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이다.

얼마 뒤 문태아저씨는 계속 집짓는 일에 몰두했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그날 낮에 우리집에 큰 돈이 들어왔고, 그 돈을 넣어두는 것을 문태아저씨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보았다. 그런데 마침 큰 돈이 필요한 일이 있었던 문태아저씨가 순간 욕심을 낸 것이었다”라는 것이다. 목수일을 다시 하던 문태아저씨가 며칠 뒤 아버지를 만나 용서를 빌며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는 것이다.

문태아저씨의 수고로 우리 새집은 그렇게 지어져 갔다. 절대로 도둑질하지 않게 선한 아저씨가 어려운 상황에서 순간적인 실수를 저질렀지만, 다행히도 모든 것이 조용하게 끝이 났다. 화해와 용서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었다. 문태아저씨 이야기는 내게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추억이다. 아버지는 이 일 말고도 몇번의 용서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 용서의 미덕이 내안에도 크게 자리잡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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