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75] 부산에 가다

By | 2014년 9월 22일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해, 1월에 나는 부산에 갔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결혼을 할 작은 아버지와 나를 포함해 모두 4명이었다. 진도에서 밤에 배를 타고 목포로 갔다. 그날은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배가 몹시 흔들거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1층과 지하칸에 내려가도록 했다. 강한 빗줄기와 바닷물이 배의 옆 유리창에 세차게 내리치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게 목포에 도착하여 잠을 자고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처음으로 타보는 기차이다. 기차는 양쪽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놓여 있었다. 목포에서 구입했는지 아니면 진도에서부터 싸왔는지 모르겠지만 찐 달걀이 많았다. 문제는 부산까지 가는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하루종일 가는 것 같았다. 처음타는 신기한 기차였지만, 지루한 여행이었다. 아버지께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셨지만 지루함은 계속되었다. 거기에다가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계속 들락거렸다.

화장실칸에 앉으면 철로가 보였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하는 그런 기차였다. 대변이 바로 철로위에 떨어지는 구조이다. 사실 아무리 배탈이 났다고 해도 철로가 보이는 화장실에 앉아 있는 것은 여간 불편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화장실 문을 열고 아버지를 여러번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부산에 도착해서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바로 목포로 가지 않고 어디론가 갔다. 거기서 머물렀던 여관이 생각난다. 방 한구석에 보일러 호스 밸브가 있는 그런 여관방이었다. 아궁이에 불을 데펴서 살던 온돌과는 다른 구조의 방을 처음 본 것이다. 그러나 그 여관은 우리집 온돌만큼 따뜻하지는 않았다.

다음날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는 어디론가 갔는데, 그게 바로 “영도다리“였다. 다리가 들리는 신기한 광경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날은 영도다리가 고장이 나서 들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거기에 기차를 타고 목포로 왔는지, 배를 타고 여수나 목포로 갔는지 기억이 없다. 다만, 집에 와서 목포에서 사주신 안경달린 털모자를 자랑했던 기억이 있다. 이 모자는 결혼식 사진에 찍혀 있다.

최초의 기억 이후에 가장 오래된 기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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