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85] 만화를 섭렵하다

By | 2014년 9월 23일

4학년 겨울방학으로 기억한다. 그 겨울방학에도 어김없이 할아버지집에 갔다. 거기에서 일주일 가량 머물렀다. 할아버지댁 방안에는 한쪽에 고구마가 싸여있다. 어느 겨울에나 그렇다. 방안에서는 황토냄새가 풍긴다. 고구마에 묻은 황토의 냄새가 방안 가득하다. 고구마는 옥수수대로 엮은 울타리를 만들어 방의 윗목 한모퉁에서 보관한다. 밖에 두면 얼었다 녹으면서 빨리 썩기 때문에 방안에 보관하는 것이다. 겨울방학 중 일주일은 늘 그렇게 할아버지집에서 놀곤 했다.

긴 겨울, TV도 없던 시절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사촌동생을 꼬드겨 만화방에 갔다. 만화방은 가게가 아닌 가정집안에 차린 만화방이었다. 할아버지집에서 불과 10m도 떨어지지 않은 집이었다. 처음엔 몇권씩 빌려다가 보기 시작했다. 한번 빌리면 사촌동생들까지 함께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루에 빌리는 권수가 점점 많아졌다. 집에서 오면서 아버지께서 주신 용돈이 두둑했기 때문에 만화방의 만화의 1/3가량을 보았다.

돈으로 따져도 만만치 않은 액수였다. 4일째가 되는 날 만화방 주인(채 20살이 되지 않은)은 “이제 이 곳의 만화를 다 봤도 좋다”라는 말을 했다. 아마도 초등학생이 너무 많은 돈을(그래봤다 2,000원어치 정도 봤을까?) 썼다고 생각했나 보다. ‘이게 왠 횡재인가?’ 나는 그 날부터 밥먹는 시간외에는 만화를 보았다. 3일동안 그 집에 있는 만화를 모두 보고 말았다.

내 평생에 그렇게 많은 만화를 읽어 본 적은 그 뒤로도 없다. 당시에 이런 말이 있었다. ‘만화를 너무 많이 보면 미치게 된다.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다가 미쳐버리게 된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더냐? 공짜로 만화를 본다는데 무조건 다 읽어 버렸다.

아마도 그 이후로는 만화보다는 책을 더 많이 읽게 되었다. 만화에 질린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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