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86] 코피를 쏟다

By | 2014년 9월 23일

초등학교 2학년 때 학년초에 담임선생님의 군입대로 말미암아 교감선생님이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이 이야기 “교감선생님과 교감신경계“를 쓴 바 있다). 교감선생님이 담임을 맡았지만 아무래도 학생들은 통제를 어느정도 벗어난 상태였다.

어느날 수업이 끝나고 청소를 할 때였다(1학년때는 고학년 형들과 누나들이 와서 해주지만 2학년 때 부터는 학생들이 직접 청소를 한다). 청소는 먼저 책걸상을 뒷쪽으로 밀쳐놓고 앞부분을 청소한 후에 다시 책걸상을 앞쪽으로 밀어놓고 교실 뒷 절반을 청소하는 방식이었다. 뒷쪽을 청소하던 중 장난끼가 발동했다. 내가 바케스를 뒤집어 쓰고 술래잡기를 시작하였다. 고무 바케스는 무겁고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도망가는 친구들의 발만 보일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눈에 불이 번쩍했다. 누군가 바케스를 주먹으로 때린 것이다. 한 대가 아니라 마구 때렸다. 순간 바케스를 벗었으나 코에서는 이미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코피가 잘 멈추지 않았다. 교실 바닥에 엄청난 코피를 쏟았다. 때린 친구의 이름은 “이O식”이었다. 이차식은 둔전저수지 근처에 산다. 나짜고 아저씨 집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산다.

선생님도 오지 않았다. 코피가 멈추자 청소를 마치고 집에 와서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엄마의 반응이 별로였다. 엄마에게 갔을 때는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코피를 흘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심각하게 말씀을 드렸는데도 말이다.

왜 이O식이 나를 때렸는지 당시엔 알지 못했다. 사과도 하지 않았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더 든 뒤에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다. 그 친구의 가정환경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흘려본 코피 중 가장 많은 코피를 흘린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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