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87] 소풍이 싫어요

By | 2014년 9월 23일

봄과 가을, 학교에는 늘 소풍을 간다. 소풍을 가는 것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한다. 학교를 떠나 자연에서 보내는 일이 즐겁기도 하거니와,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음식과 과자, 음료수를 먹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게는 소풍이 그리 달갑지 않은 날이다.

소풍은 주로 녹진항(울돌목)아니 도깨불치, 용장산성, 용인리 바닷가 등 거의 정해진 장소들이다. 한시간 가량을 걸어가면 여러가지 주의사항을 듣는다. 그리고 반별로 다시 모였다가 바로 점심을 먹게 된다. 점심은 친한 친구나 같은 동네 선후배, 또는 형제들끼지 자유스럽게 먹는다. 이유는 도시락을 한꺼번에 가져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도시락에 큰 밥통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다. 소풍용 배낭도 거의 없던 시절이라 보자기에 싸서 들고 왔을텐데, 어린 학생들이 무겁게 들고 한시간을 걸어서 간다는 것이 당시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튼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밥을 먹는다. 당시에는 매트도 없었으니 풀밭에 앉아서 먹었다. 사실 그런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소풍가는 곳에는 따로 수돗물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물을 싸왔다. 어머니는 늘 물통에 물을 싸주셨는데, 사이다를 한병 들고와서 마시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어머니는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을 싫어 하셨기 때문에 물통에 물을 싸주시곤 했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면 장기자랑 시간이었다.

장기자랑시간에 선생님이 사회를 본다. 그리고 “자~ 노래나 다른 장기를 보여줄 친구 나와 주세요”라고 말한다.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다들 고개만 숙이고 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보다가 주춤거리는 아이를 불러내서 시킨다. 그것도 한 두명이 고작이다. 그러면 사회를 보는 선생님은 “6학년 1반 반장 나와!”라고 한다. 당시에 금성초등학교는 한 학년이 2개반씩 모두 12개 학급이었다. 반장들을 시키면 모두 12명이다.

“다음은 6학년 2반 반장~” 이런 식으로 점점 학년이 내려온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인 나의 가슴은 점점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5학년… 4학년… 3학년… 2학년… 드디어 내 차례가 온다. 망설이다가 노래를 부르지만 노래를 불렀는지 어쨌는지 기억도 없다. 그냥 숨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3학년때 부터는 점심을 먹은 후에 숨기로 했다. 앞에 나가 노래를 하지 않으려면 그것이 최선이었다. 문제는 장기자랑이 끝나고 곧바로 “보물찾기”가 있는데, 그 시간을 맞추기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물찾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고 소풍의 즐거움을 망쳐버리고 만다.

이런 이유로 소풍이 즐겁지 않았다. 아니 싫었다. 늘 부담으로 다가오곤 했다. 1학년 때 부터 5학년 때까지 계속 반장을 했는데, 6학년 때는 반장으로 뽑혔는데도 반장을 하지 않겠다고 소동을 피운 덕에 반장을 맡지 않게 되었다. 전교회장에도 나가지 않았다. 내가 6학년 때 전교회장은 이근중이었다. 그런데 근중이가 서울로 이사를 갔다. 부모님이 피난을 내려오신 분인데, 피난민들이 많이 살았던 안농리에서 살았던 근중이네는 서울로 이사를 갔다. 그런 이유로 다시 전교회장을 맡았다. 아무튼 나는 반장하는 것 자체가 싫었던 이유가 바로 소풍과 관련이 있다.

소풍에 대한 기억 중 또 하나는 “소풍배낭”이다. 당시에는 도시락을 보자기에 싸가지고 다녔다. 소풍 뿐만 아니고 책도 보자기에 싸아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름하여 “책보”라는 것이다. 보자기에 책을 싸서 허리에 묶거나 어깨쪽으로 기울게 매기도 한다. 소풍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배낭을 사다 주셨다(목포에 같이 가서 샀던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헷갈린다). 당시에 소풍배낭을 맨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어설프게 만들어진 배낭이다. 아무것도 넣지 않았을 때는 납작한 형태의 배낭이다. 즉, 사각형 두장을 맞대어 박음질 하고 거기에 어개끈을 달아맨 그런 매우 단순한 배낭이었다. 물론 작은 주머니가 두개가 달려 있긴 했지만 그것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런 어설픈 소풍배낭도 다른 친구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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