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들 생일이 되니 태어날 때가 생각난다

By | 2015년 7월 17일

25년전 무더운 7월 여름, 굵은 팔뚝과는 달리 작은 몸통을 가진 아내를 검진한 산부인과 교수님께서 아이가 너무 작다며 유도분만을 권했다. 문제는 담당교수님이 나의 동아리 선배였다. 너무 조심스럽게 약을 조금씩 사용하느라 결국은 분만 시간이 길어지고 말았다. 자궁수축제가 제대로 작용하지 않은 탓이다. 하루종일 고생하던 아내는 그냥 집으로 갔다. 다음날 다시 입원해서 약을 더 늘려서 분만이 시작되게 되었는데 결국 3일이라는 시간을 병원에서 허비하고 말았다.

분만의 시간이 되었는데 아내는 별로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따라서 별로 진통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 참아 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진통이 있는 동안 배가 고파 잠시 “빵을 사먹고 오겠다”라고 말하는 남편이 얼마나 철없이 느껴졌을까?

분만이 시작되어 분만대로 올라갔는데 담당교수님이 오시지 않아 분만을 일부러 지연시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교수님이 퇴근하셨기 때문에 집에서 병원까지 오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아무튼 그렇게 첫째 아들이 태어났다. 산모도 아기도 모두 3일간 고생한 결과이다. 쭈글쭈글한 두꺼비가 신생아실에 누워있는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기는 예상과는 달리 2.7kg으로 태어났다. 아마도 배를 만져서 예상한 2.3kg보다 400g이 더 되는 아기였다. 그 아기가 벌써 20대 중반이 되었다니 세월이 참 빠른 듯 하다.

당시에 옆 침대에 있던 산모도 그날 딸아이를 출산했다. 진통이 너무 심해서 소리를 지르고, 수건을 입에 물고 참아내고 있었다. 입에 문 수건에서 침이 떨어질 정도였으니 산모의 고통은 짐작이 간다. 재미있는 것은 4년 뒤 내가 어떤 정형외과에서 밤에 당직의를 할 때 그 여자아이가 환자로 왔다. 생일이 같아서 그냥 물어 보았는데, 엄마가 바로 그 산모였다. 당시 상활을 설명하니 기억을 해낸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 무더운 여름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이제는 청년이 되었다. 그만큼 아내와 나는 늙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수많은 시간들이 감사할 뿐이다.

2 thoughts on “첫째 아들 생일이 되니 태어날 때가 생각난다

  1. 김은영

    아이의 탄생 과정을 곁에서 함께 하며(?) 고스란히 지켜 보셨군요.
    저는 떨어져 지낸 이유로 그런 시간을 나누질 못했습니다.
    출산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갔는데 그때도 실감 나질 않더군요.
    참 미안한 일입니다.
    여자는, 엄마는 남자와 다르다는 것, 인정합니다.
    >> 케이프타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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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형태 Post author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철없던 시절이었죠.
      아내에게 따뜻한 말한마디로 못했던…… ㅠㅠ

      말씀하신대로… 여자는 참으로 강하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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