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리팩스의 기억을 더듬다

By | 2016-09-16

추석명절 휴일 3일째, 점심을 먹고 핼리팩스(Halifax, NS, Canada)의 추억을 더듬고 있다. 우선 온라인상에서 핼리팩스한인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아직도 우리집 IP로는 접속이 안된다. 이유는 몇 개월전에 오랜만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누군가 질문을 올렸길래 내가 아는 한도내에서 답변(교회예배에 대한 질문이었음)을 했는데, 바로 내가 접속하기 위해 사용한 IP를 차단을 해 놓았다. 그런 이유로 게시판을 읽지 못한다(물론 읽는 방법은 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읽을 이유는 없다).

그 다음에, 노바스코샤한인교회(2003년 4월에 생긴 교회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내가 찾고자 하는 분의 이름이 눈에 띈다. 게시판을 읽기 위해 회원가입도 했고, 승인도 되었다. 그런데 내가 찾는 분이 현재는 그 교회에 안계신 듯 하여(혹시 이사를 갔을 수도), 그 곳 사역자에게 메일을 보내 놓은 상태이다.

기억이 잘 나지 않은 것들을 아내에게 물어보니 아내가 바로 바로 대답을 해준다. 얼마 전에 사진에서 찾은 한 자매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는데, 아내가 찾아내 바로 알려 준다. 아내가 수첩을 꺼내 든 것이다. 당시에 수첩이 없어서 A4 용지에 줄을 그어 만든 종이 위에 빼곡히 적어 둔 기록들을 보고 이야기를 해준 것이다. 역시~

“기록은 기억을 이긴다”

이 진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다 기억할 줄 알았던 수많은 일들과 수많은 사람들은 잊혀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을 통하여 기억해 내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아내는 계속해서 수첩을 뒤지고 있다. 내 질문에 대답하고자 시작했던 수첩뒤지기가 이제 “아내의 추억되살리기”가 되고 있다. 계속 사람들의 이름이 나온다.

내가 공항에서 픽업과 라이드를 해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온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픽업하고 라이드를 했다. 별로 안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름들이 줄줄이 나온다. 유학생 가정들, 방문교수들, 유학생들 , 어학연수생들, 등 공항픽업에서부터  현지에 있는 사람들의 공항라이드까지, 참으로 오지랖도 넓다. 사진도 몇장 나온다. 교회에서 세례의식 때 찍은 것과 아이들의 사진이다. 당시 담임목사였던 최목사님께 아이폰으로 찍어 보냈다. 다음주에 책 보낼 때 사진을 같이 보내야겠다.

아무튼 바쁘게 살았던 시절의 추억이다. 잊고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일들이 되살아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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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2016.9.19.

노바스코샤 한인교회 웹관리자를 통해 찾고 있는 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몇 년전에 토론토로 이사를 가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