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예과가 부활되고 나서, 의예과 2학년 1학기에 개설된 의학용어를 이제 강의하지 않는다. 다른 교수에게 강의를 부탁했다. 과목을 넘기며 한가지 부탁만 했다. 챕터별로 나누어서 강의하는 팀티칭은 하지 말고, 힘들더라도 오직 혼자서 강의 전체를 맡아서 해달라고 했다.
팀티칭은 수업의 깊이와 넓이를 잘 맞추지 못하면 학생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강의의 깊이와 폭을 정하는 것은 팀티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은 팀티칭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일관성있는 강의가 되기 위해서는 혼자서 강의를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애정을 가지고 시작한 의학용어 강의가 내가 바라던 강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물려준다. 떠먹여주는 것에 익숙한 학원세대들에게 나도 모르게 떠먹여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만 두는 것이다. 예전처럼 학생들을 소몰이 하듯이 끌고갈 에너지가 내게는 없다.
좀 더 자율적으로 학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소망일 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상황을 회피한다고 나를 비난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떠먹여주는 강의를 하고 싶지 않다. 내 자신이 서서히 그렇게 물들어가는 것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 스스로 용납되지 않는다.
오늘 아침, 강의를 맡게 될 교수가 다시한번 내게 다시 한번 묻는다. 아마도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과목이기 때문에 다시한번 자신에 확실하게 강의를 넘기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조금전 강의안을 모두 보냈다. 미련과 함께.
다만, 당분간이라는 전제를 단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 다시 강의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조금은 남겨 둔 것이다. 지금은 할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