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인을 만나다

By | 2019년 5월 3일

햇살이 너무 좋은 오늘 오전에 진메마을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겨울부터 꾸준히 방문하고 있는 김용택시인의 생가가 있는 곳, 진메마을을 이 따뜻한 봄날 오전에 꼭 가보고 싶었다. 시인의 집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오후에 가면 늘 그늘진 시인의 집을 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햇볕이 드는 마루에 앉아서 앞산과 섬진강을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에 오전에 방문을 하게 된 것이다.  

김용택시인의 생가
시인의 생가, 시인이 사용했던 방문 위에는 ‘회문제’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따스한 봄햇살이 들어오는 마당과 처마밑

내가 기대했던대로 시인의 생가는 따뜻한 봄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처마밑 마루 앞까지 햇살이 들어왔다. 북향집치고는 최고의 햇살을 쪼이는 것 아닐까? 나는 거기에 걸터앉아 있었다. 이미 시인의 생가에 들어서기 전에 생가의 동쪽에 있는 시인의 대문으로 나오는 시인과 멀리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앉아서 시인의 마당을 둘어보고 있었다. 돌담 아래에 작은 꽃밭에는 꽃들이 피기시작했고 이름모를 꽃들도 새싹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앉아 있을 때 시인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의 오른쪽 마루에 걸터 앉으셨다.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시작한 대화는 한 시간동안 계속되었다.

가끔 얼굴을 쳐다보면서 대화를 하긴 했지만, 가운데 기둥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앞마당과 돌담, 그리고 앞산과 섬진강을 바라보고 대화를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한국사람의 특성상 서로 통성명을 확실하게 하고 대화를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나도 내가 누구인지 말을 하지 못한 채 대화를 이어갔다.

시인의 생가 마루에 앉아서 바라보는 앞산과 섬진강, 그리고 돌담. 마을 앞 길에 버스와 들어왔다.

“선생님을 10년 전에 이마트에서 처음 뵈었었습니다.”라는 말로 나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시인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대화가 이어졌다. 시인이 주로 많은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거기에 조금씩 보태가며 대화를 하였다. 주요대화 내용을 아내에게 다시 물어가면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앞산에 딱따구리는 나무를 계속 쪼아댔고, 이름모를 새가 간혹 울었다. 전기검침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전기사용량을 측정하고 다니기도 했다. 시인는 그와 전기사용량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마을까지 들어오는 버스(임순여객)이 진메마을에서 되돌아가기도 했다.

  • 시골에서 사는 삶은 매우 길다. 결코 심심하지 않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결코 짧지 않다. 시골에서 살면 그 시간은 더욱 길어진다.
  • 또한 시골에서의 삶은 결코 심심하지 않다. 다양한 변화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 변화가 더디고 천천히 가는 것 같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
  • 마을 어귀에 있는 두 그루의 큰 느티나무 중 시인의 생가에 가까운 느티나무는 시인이 어린 시절에 마당에 있던 것을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한다. 다른 느티나무가 수령이 100살 정도 된다고 하는데, 오히려 시인이 심은 5-6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더 크다. 그 이유를 시인이 설명해 주었는데, 이해가 되었다.
  • 동네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와 같은 큰 나무의 존재에 대하여서도 샤마니즘적인 측면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왜 사람들이 나무를 동네어귀에 심는지, 또 단독주택을 짓는 사람들이 마당에 나무를 심으려 하는지에 대하여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 시골에 살면서 앞에 보이는 산의 나무들이 모두 자신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도시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해야만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며 사는 안타까움도 나누었다.
  • 시인의 생가와 옆에 기념관(임실군에서는 김용택문학관으로 부르지만, 시인은 그냥 ‘기념관’이라 불렀다.)에서 사용하는 전기세는 임실군에서 내주기 때문에 더욱 신경써서 절약을 한다고 한다. 괜히 군에서 전기세를 내주니 함부로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했다.
  • 시인은 앞산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이름을 일일히 나열하면서 이들이 계절의 흐름에 따라서 어떤 순서대로 잎사귀를 내는지 설명해 주었다. 다만, 요즈음 환경의 변화 때문인지 이런 순서가 자꾸 깨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 앞산 아래 섬진강변에는 고라니가 많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 시인의 생가 마당을 둘러싼 돌담에 등나무 위로 간혹 꽃뱀이 지나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젊었을 때 밤에 손전등도 없이 옆마을 가게까지 갔을 때, 그 주인이 “길에 뱀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왔느냐?”라는 말을 들은 이후에 뱀을 의식하고 다녔다는 에피소드도 말해주었다.
  • 겨울에 눈이 많이 왔는데, 전주 시내에 갈 일이 있어서 급하게 택시를 불렀는데, 마을을 벗어나 27번 국도에 이르니 눈이 하나도 없어서 허망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 초등학생 단체가 오면 자신이 직접 아이들과 대화를 직접 한다고 했다. 어른 팀들이 오면 주로 임실군에서 파견한 해설사가 설명을 한다고 한다. 성인들이 오면 주로 “사진찍자”는 것외에는 대화가 잘 안된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그렇지 않아도 같이 사진찍자고 하려고 했는데, 부탁을 못하겠네요.”라고 말하고 둘이서 한참 웃었다. 그런 이유로 같이 찍은 사진이 없다. 나중에 다시 얼굴을 뵙게 되면 같이 사진을 찍어 보려고 한다.
  • 임실군과 순창을 오가는 버스(임순여객)는 진메마을까지만 들어온다고 한다.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는 첨단마을과 구담마을로 가는 버스는 물우리 뒤로 되돌아가는 버스가 있다고 한다. 장암리로 들어오는 버스는 진메마을이 종점이라고 한다. 이 대화는 버스가 마을 앞길에서 유턴하는 것을 보고 나눈 것이다.
  • 시인의 생가는 2015-2016년 사이에 수리가 되었고(이 부분은 나중에 검색을 통해 알게 됨), 담장도 고쳤고, 옆에 기념관과 시인의 집이 새로 지어졌는데, 이번에 다시 생가의 수리가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현재 설계가 들어가 있고, 9월부터 수리가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 시인의 기념관과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생가와의 조화를 고려하여 설계했고, 실제로 잘 지어져서 현대식 건축임에도 불구하고, 생가가 작아보이지 않고,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만족감을 나타냈다.

시인과의 대화는 이렇게 한시간이 이어졌다. 따뜻한 봄날에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따뜻한 시인과의 만남이었다. 전혀 예상하지도, 기대도 하지 않았던 우연한 만남이었다. 나누었던 모든 대화를 적지 못함은 기억의 한계 때문이다.

마을 앞 두 그루 느티나무. 앞쪽에 보이는 나무가 시인이 어렸을 때 심은 느티나무이다.
시인의 느티나무 아래에서 찍은 시인의 생가.
시인의 느티나무에서 바라본 다른 쪽 느티나무.

지금까지 진메마을을 다녀오고서 적어 둔 글들이 몇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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