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노트 이야기 ⑥ 좋은 슬라이드 만들기

By | 2013년 6월 3일

요즈음은 강의를 할 때 대부분 파워포인트(PowerPoint, 윈도우즈 환경에서의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 일명 ppt)이나 키노트(Keynote, 맥용 프로그램)을 쓴다. 예전처럼 칠판에 적어가면서 강의하거나 책만 보면서 강의하는 교수는 거의 없다. 특히 강의노트를 원하는 학생들의 요구에 교수들은 강의할 때 쓰는 자료를 그대로 준다. 간혹 조금이라도 다르면 히스테리컬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면 슬라이드는 무엇인가? 파워포인트가 되었던지 키노트가 되었던지 이런 자료들은 보조자료이다. 이것이 진정한 강의안도 아니고, 교과서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자료가 전부인양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 따라서 교과서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너무 섬세하게 만든 ppt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배우는 학습의 량을 스스로 한정시켜버리려는 속성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간혹 학생들(학부생이던지 대학원생이던지간에)도 발표를 해야 할 때도 있는데, 슬라이드를 만드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 온 ppt는 많은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잘못돈 슬라이드 제작의 결과이다. 이런 실수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수에게서도 볼 수 있다.

ppt는 시청각 수업자료 중 하나이다…라는 명제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좋은 그림 한 장은 천 마디의 말보다 더 나은 가치를 가질 수 있다”라는 학습자료의 중요성을 제대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슬라이드를 만드는 일은 “좋은 수업 자료”의 준비이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칠판(화이트보드)이나 플립차트(큰 종이에 쓰면서 넘기는 것), OHP(오버헤드 프로젝트)에 비하여 제작도 간편하고 강의실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파워포인트가 대세이다. 정해진 시간에 충분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들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면 해답은 매우 쉽게 나온다. 우리는 왜 스티브 잡스나 애플의 CEO들처럼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 없는가?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답은 쉽게 나올 수 있다.

첫째로, 파워포인트는 강의 보조자료일 뿐이다. 즉 시청각자료일 뿐이다. 모든 강의내용은 강의자 머리에서 나온다. 슬라이드를 보여주는 것은 그것을 잘 전달하기 위한 보조수단일 뿐이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지식을 슬라이드에 담을 수는 없다.

둘째로, 시청각 자료이기 때문에 그만큰 함축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슬라이드이어야 한다. 어떤 강의자는 강의안을 그대로 옮겨서 읽기만 한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이 강의를 하기 쉽도록 했을 뿐 강의효과는 떨어진다. 그것은 오히려 강의안을 보고(교수도 강의안을 보고, 학생도 강의안을 보고) 읽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강의안을 그대로 옮겨놓은 슬라이드만큼 나쁜 슬라이드는 없다.

세째로, 디자인된 슬라이드이어야 한다. 보기 좋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강의내용이 물흐르듯 하면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즉, 한시간의 강의시간 동안 강의내용이 물흐르듯 흘러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슬라이드 구성을 그렇게 해야 한다. 즉, 수업디자인이 필요한 것이다. 어떻게 수업을 시작해서, 어떻게 진행하고, 중간 중간에 어떤 부분이 강조되고, 그리고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디자인)이 되어 있어야 한다.

네째로, 그 디자인된 프리젠테이션의 흐름이 완전히 나의 것이 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강의자는 다음 슬라이드가 무엇이 나올 것인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강의자는 뒷장에 바로 나올 내용을 미리 설명하는 경우가 있고, 마지막 슬라이드임에도 불구하고 화면이 다 끝나버려 “아~ 여기까지입니다”라고 말한다. 준비되지 않은 프리젠테이션의 전형을 보여주는 경우이다. 전제적으로 잘 짜여진 프리젠테이션의 느낌을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섯째로,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은 량을 강의하려기 보다는 정해진 시간에 제대로 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 ‘내가 이만큼 많이 시간을 할애했는데 주어진 시간이 짧아서 다 못한다’는 느낌을 청중에게 주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기과시이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청중들은 같은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손해봤다는 생각을 한다. 슬라이드 갯수가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구성이어야 한다. “시간이 없음으로 다음 슬라이드…”하면서 넘어가는 일은 자신의 프리젠테이션을 실패로 이끌고 만다.

여섯째로, 애니메이션을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 반복되는 에니메이션은 강의를 산만하게 만든다. 정말 효과적인 애니메애션 구성을 해야 한다. 강의내용이 중요하지 어떤 효과를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조잡하게 애니메이션을 남발한다. 슬라이드 한장 한장에 정성을 들이는 것은 좋지만, 청중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강의량이 많다. 의과대학교수치고는. 그리고 해부학과 조직학, 신경해부학, 발생학 등을 강의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림이 많다. 그림이 많은 경우에도 어떻게 해야 학생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를 늘 고민한다. 강의시간에 학생들을 굳이 나누어 본다면 앞 스크린을 쳐다보면서 제대로 집중하고 있는 학생은 1/3, 화면을 보고 있어도 딴 생각하는 학생이 1/3, 강의안을 보고 있는 학생이 1/3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강의를 한다. 따라서 강의안을 보고 있는 학생들도 고개를 들면 무엇을 말하고 가르키고 있는지 인식할 수 있도록 레이져빔 보다는 화살표시가 마킹을 한다. 이런 작업들은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투자한다. 좋은 강의안을 만들기 위함이다.

누구나 슬라이드를 잘 만들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툽자한다면 자신이 강의하거나 발표하는 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청중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런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키노트 이야기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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