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식(가명)이는 나보다 두 살이 많은 동네 형이다(편이상 형이라 호칭하지 않는다). 우리집에서 한집을 건너뛰면 병식이네 집이다. 병식이는 대가족이 산다. 아들이 많았던 병식이네는 병식이가 막내 아들이다. 동년배에 비하여 키와 덩치가 컸던 병식이는 동네에서 대장노릇을 많이 했다.
어느날 병식이는 동네아이들을 5-6명 불러냈다. 그리고 우리집 앞에 있었던 가게에서 라면을 시켜서 먹었다. 매일 오후가 되면 몇몇 아이들을 불러내서 라면을 사곤했다. 며칠이 지나자 동네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그 라면을 사먹었던 쌀은 자신의 집에서 훔쳐온 것이라고 했다.
나도 라면을 얻어 먹었으니(그것을 훔친 쌀로 사주는 줄 전혀 몰랐지만) 마음이 여간 불편했다. 소문이 나자 병식이는 자신의 집 장롱에 있던 돈을 훔쳐 서울로 달아났다. 당시에 서울이나 대도시로 도망한 애들은 대개 집에 있는 돈을 훔쳐서 가곤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병식이네 형이 서울을 가서 잡아 왔는지 아니면 스스로 돈이 떨어져서 돌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돌아온 날 밤에 병식이는 밤새 얻어 맞았다.
덩치 큰 병식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매를 맞는다. 병식이의 비명소리가 커질수록 라면을 얻어먹는 내 마음의 부담은 더욱 커져가는 그런 밤이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라면을 팔았던 동네 가게의 아주머니도 좀 이상하다. 병식이가 가져 온 쌀이 온전한 쌀이라고 생각했었을까? 아니면 의심이 갔지만 그냥 라면을 판 것이었을까? 나 말고 라면을 얻어먹은 친구들(모두 나보다 한 두살 많은)은 과연 나처럼 전혀 모른 상태에서 얻어먹은 것일까?
추억을 되살려 글을 쓰려고 마음 먹었는데, 병식이의 사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