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앞쪽으로 신작가 있었고, 옆쪽으로는 둔전리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물론 반대편 길가의 집들은 모두 둔전리에 속한다. 길 하나로 장언리와 둔전리가 구별되었다). 우리집 약방은 신작로 쪽으로 문이 나 있지만, 약방의 뒷쪽에 있는 안방의 창문은 바로 그 옆길쪽으로 나있다. 옛날 집들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길가에 있는 집들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못했다. 특히 우리집은 바로 길가에 있던 터라 더욱 그러했다.
어느날 오후에 집으로 가던 중, 누군가 우리집 안을 들여다 보는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여자아이였다(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이다). 그런데 그 여자 아이는 어떤 남자아이를 업고 있었다(누구네 아들인지 생각은 안나지만 그 여자아이의 친동생이거나 사촌동생이거나 했을 것이다). 남의 집을 한참 들여다 보고 있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마침 내 손에는 장판을 깔면서 잘라낸 얇은 장판조각이 들려 있었다. 마치 작은 책찍이나 줄 자 같은 그런 긴 장판 조각이었다. 어디에서 구했는지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집에 굴러 다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여자아이에게 다가간 나는 그 장판조각을 마치 책찍질 하는 것 처럼 던지듯 잡아당겼다(후려치는 것이 아닌 살짝 던지듯 잡아다니면 그 끝이 타겟을 때리게 된다). 그런데 그만 그 장판조각 끝이 업고 있던 아이의 얼굴을 때리고 말았다. 내가 다가가자 그 여자아이가 놀라서 고개를 돌리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업혀 있던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왼쪽 뺨에 장판조각에 의해 생긴 발갛게 생긴 줄 모양의 자국도 선명했다.
그 여자아이는 자기 집으로 달려갔고, 곧바로 그 아이의 부모가 우리집으로 쫓아 왔다. 당연히 집에 있던 엄마가 사과를 했다(치료가 필요하거나 그런 상황은 절대로 아니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외출하셨던 아버지가 집에 오셨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도망을 쳤다. 아버지께 혼날 것이 두려웠던 탓이다. 나는 동네 이곳 저곳에 숨어다녔다. 아버지께서 나를 찾아 동네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셨다.
숨을 곳이 별로 없었던 작은 마을이라 나는 결국 아버지에게 붙잡혀 집으로 왔다. 아버지는 매질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나를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묶어 두었다. 30여분 묶여 있었는데, 마침 우리집에서 하숙을 하던 초등학교 선생님 두분(김영광선생님과 윤영윤선생님)이 퇴근을 해서 집으로 오셨다. 그 때가 여름이었는데, 우물가에서 씻으시던 두 선생님께서 나를 보고 한참 웃으셨는데, 정말 창피해서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다. 잘못을 한 것은 맞지만 정말 창피한 기억이다.
물론 저녁식사시간이 되자, 나는 풀려났고 아버지는 내게 등물을 해주셨다. 아들에게 등물을 시켜주심으로 나의 잘못을 용서하셨고 창피한 마음을 어루만지셨다. 따라서 나는 조금이나마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집을 들여다 보던 그 여자아이의 이름은 “이미자”이다.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아마도 이 일을 당사자는 전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