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28] 무당의 굿

By | 2014년 9월 16일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절에 다니셨다. 그리 정성스럽게 다니는 것은 아니었고 사월초파일이 되면 절에 다녀올 수준의 불자였다. 불경을 외우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절에 불을 켜고 비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또한 절에 갈 무렵에는 육식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언젠가 어머니가 머리가 너무 오랫동안 많이 아프다며 굿을 하기로 하셨다. 무당은 굿을 하기로 한 며칠 전에 집을 둘러보고 갔다. 굿을 하는 당일 날 어떻게 하나하고 호기심있게 보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굿을 하던 무당이 갑자기 어머니한테로 고개를 돌리더니만.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옷을 샀구마이~! 증조 할머니가 증손 며느리가 새옷을 사는 것을 시샘하고 있어! 옷값을 드려야 해! 옷값을 내! 옷값을 드려야 한다구!”라고 하면서 계속 돈을 요구했다. 당시에 초등학교 2, 3학년 어린이였던 나도 무당의 잔꾀를 읽어내고 있었다.

‘어~ 누구나 우리 엄마를 보면 옷이 좋은 옷을 입었고, 옷이 수시로 바뀌고 하니 누가 봐도 옷사서 입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시골에서 우리 어머니처럼 옷을 잘 입는 사람이 흔치 않았다. 따라서 무당은 옷값을 요구하며 돈을 받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에게 옷은 하나의 약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머니께서 오랫동안 시달려오던 두통을 위한 굿이었지만, 그 두통은 80세가 넘어선 지금도 계속 반복적으로 고통을 받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그 굿사건 이후에 나는 어린 나이에 무당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결정적인 단서가 바로 핑계거리였던 “증조할머니의 시샘“이었다. 초등학생인 나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였다. ‘아니, 증손며느리가 새옷을 샀다고 증조할머니가 시샘을 한다고? 그렇다면 더욱 굿을 하지 말아야지! 그런 조상이라면 조상도 아니지. 어떤 조상이 후손이 잘된다고 시샘을 한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을 당시에 했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진도는 어업보다 농사를 주로 짓는다. 그런데 어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가끔 태풍으로 인한 해양사고가 발생한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면 굿을 한다. 굿은 바닷물 속에서 실종된 사람의 신체의 일부나 물건을 찾는 행위였다. 주로 손톱이 많이 나왔다. 물론 그것이 가짜였겠지만 그것으로 장례를 치르게 하였다. 실종된 상태에서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일은 무당이 하곤 했었다. 내 친구들 중에서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어디 말이 될법한 일인가?

어머니는 그 뒤로도 30여년간 초파일이 되면 어김없이 절에 반복적으로 가셨다. 10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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