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60] 가끔씩 사라지는 엄마와 아빠

By | 2014년 9월 20일

내가 어렸을 때 4형제가 있었다. 큰 누나, 작은 누나, 나, 그리고 동생 이렇세 넷이다. 막내 동생은 태어나지 않았을 서절의 이야기이다. 형은 읍내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어렸을 때 함께 살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는 일을 도와주는 누나가 있었다. 가끔은 이모도 와 있었고, 막내 고모도 오곤 했다. 때론 작은 아버지가 오시기도 했다. 이렇게 친척들이 와 있는 며칠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주로 전주를 가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는 어려서 엄마가 병원에 갔었다는 것만 알았다.

어머지는 젊어서 부터 아팠다. 특별히 진단명이 내려지지 않았으나 늘 그렇게 아팠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아픈엄마이다. 지금도 옛날에 아팠던 것과 비슷하게 아프시다.

당시에 전라도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이 예수병원이었다. 진도에서 배를 타고 목포를 간 후에 기차를 타고 전북 익산역(당시에는 이리역)에서 내린 후, 버스를 타고 전주로 가셨다. 따라서 잘 하면 1박 2일지만 대개는 2박 3일간 집을 비우셨다.

어머니의 증상은 의학적으로 신경증이었다. 그러나 아픈 모습으로 본다면 곧 돌아가시게 생겼기 때문에 그렇게 먼 병원을 다니셔야 했다. 주기적으로, 반복적으로 그렇게 아프셨다.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 중이실 때, 병실에서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아버지는 참 대단하셔요. 어떻게 그렇게 병약한 어머니를 평생을 그렇게 해주고 사셨는지 모르겠다”라고 말이다. 껄껄껄 웃으시던 아버지는 한마디 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엄마는 오래 살거다. 골골이 80이라고. 허허허”하고 웃으셨다.

주기적으로, 반복적으로 아프신 어머니는 올해 83세이시다. 아버지의 예언대로 80대를 살고 계신다. 사시는 동안 육체적으로 더 건강했으면 하는 것이 자식된 소망이다. 더 큰 소망은 엄마의 영혼이 더 편하고 풍성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예수병원이 있는 전주에 지금 내가 살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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