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원은 천주교 수녀원 같은 곳이다. 연산리에서 용인리로 가는 길목에 있다. 천주교는 아니고 기독교인들이 집단 생활을 하는 곳이다. 동강원 원장님은 몸이 비대한 편이다. 어릴 본 모습이라 정확하게 몇살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모님들과 엇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은 연세가 아니었을까? 복장이 수녀복과 비슷하였지만 수녀는 아니었다.
가끔 집에 오셨는데, 강정 같은 것을 늘 가지고 오셨다. 어머니께서도 동강원을 늘 신경쓰셨는데,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내가 굳이 옛날 추억을 떠올리면서 동강원이 나온 것은 윤영윤 선생님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윤영윤 선생님이 동강원과 인연을 맺었는지는 모른다.
윤영윤 선생님은 키가 작고 머리가 짧은 선생님이셨다(윤영윤 선생님은 “감나무에 묶이기“에서 이미 나온 바 있다). 아이들을 예뻐하고 잘 해주셨지만, 운동회 전체 연습을 시킬때는 자신의 감정이 조절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의리있는 선생님으로 윤영윤 선생님을 꼽았고 좋아했다. 소문에 윤영윤 선생님이 고아라는 말도 있었는데, 그런 이유로 동강원과 관련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실 그가 고아였는지도 불확실하다. 그 선생님이 우리집에서 잠깐 하숙을 했다는 것과 그가 고아였다는 말 때문에 그에 대한 기억이 강하다는 것이다.
동강원은 원장님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단체로 살았는데, 그 중 바깥 출입을 자주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는 내게 더위를 팔았던 바로 그 아저씨이다(“정월 대보름” 이야기에서 언급한 바 있다). 항상 지게를 지고 다녔는데, 주로 시장을 볼 때 원장님을 따라가거나 물건을 나르는 일을 했던 것 같다. 몸이 매우 가늘어 호리호리한 체격이었지만 지게를 잘 지고 다녔다.
동강원이 어른들만 사는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젊은 윤영윤 선생님과의 관계가 당시에도 궁금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중에 소문에 들어니 윤영윤 선생님은 나이가 들어 동강원 멤버들과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의 여생이 그리 좋았던 것 같지는 않다. 아니면 그가 불쌍한 동강원의 멤버들과 인생의 마지막을 왜 함께 보냈었는지 알 길이 없다.
나머지 사람들은 기억나질 않는다. 엄마를 따라 동강원 안에 들어가본 적은 있지만 모두들 말없이 조용히 일하고 있어 기억에 없다. 또한 거의 은둔생활을 하는 것으로 기억된다. 그들이 언제부터 왜 동강원이라는 공동생활을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듯 하다. 윤영윤 선생님 때문에 적어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