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98] 막내의 여유

By | 2014년 9월 23일

내가 어릴 적에는 세째딸이 막내였다. 그 아래로 태어난 쌍둥이가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나보다 열살이 어린 네째딸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상당기간동안 막내로 불리웠다. 세째딸은 항상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서 막내표시를 내곤 했다. 살결이 희고 포동포동하고, 얼굴도 예쁜, 말그대로 김약방집 세째딸이었다.

막내는 순둥이였다. 혼자서 버스를 태워 보내면 말없이 진도읍까지 갔다. 그러면 읍내에서 이모가 나가서 애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집에 올 때는 반대해서 집으로 오곤 했다. 어느날 진도읍을 떠났다는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 버스가 잠시 정차하고 있는 동안, 진도읍 이모집에 전화를 걸어 다시 확인한 아버지는 막 출발한 버스를 쫓아가 세웠다. 그리고 차에 올라 보니 세째딸이 앞쪽 자리에 편하게 앉아서 잠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수박 하나를 품에 안고서.

그런 동생과는 달리 나는 혼자서 버스를 타는 것을 두려워했다. 언젠가 진도읍내에 갔다가(갈 때는 누군가와 같이 갔을 것이다. 형하고 갔을 가능성이 높다) 올 때는 혼자서 오게 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긴장을 하고 있었다. 왜냐면 집앞 정류장을 지나치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버스가 진도읍을 출발하자마자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눈을 떠보니 버스가 서있다. 분토리라는 마을 앞에 버스가 서 있었다. 펑크가 났는지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었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함께 버스에 있는 마을 아줌마가 “애야, 걱정마라. 수리가 끝나면 출발할테니 말이다. 장언리에서 같이 내리면 된단다”라며 나를 달랬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두려움 때문에 계속 울었다. 버스에서 내릴때까지 계속 그렇게 울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울었는지 지금도 조금은 의하한 부분이지만 그렇게 많이 울었다.

나는 막내, 아니 세째딸이 갖고 있던 그런 여유가 없었다. 겁도 많았다. 생전에 아버지께서는 세째가 수박을 안고 버스안에서 자고 있던 그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어머니는 지금도 세째딸의 이런 모습을 이야기하시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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