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2

By | 2016년 4월 27일

윗집이 이사를 오면서 소음이 시작되었다. 그 전에 살던 할머니는 절구질을 주로 낮에 하는데, 지금 사는 사람(60대 중후반으로 추정)은 새벽과 밤늦게 절구질을 한다. 낮에도 하는 듯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새벽 6시반부터 시작하고, 밤에는 11시반에도 한다.

1여년전에 아내가 한번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 뒤로로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그동안 잘 참고 있었다. 지난번 윗집에서 물이 새어서 천장이 얼룩지고 떨어졌지만 그대로 넘어갔다. 위아래 살면서 그정도는 받아 들일 수 있다. 당시에 누수보다는 밤늦게, 새벽에 절구질을 하지 말아달라고 말한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뒤로도 절구질은 계속되었다. 수개월, 아니 1년 넘게 참아왔다. 그런데 최근에 손주가 왔는지 난리가 아니다. 거실 전등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참고 있었다. 요즈음 허리 통증때문에 일찍 들어와 쉬는데 도저히 쉴 수가 없었다. 초저녁부터 뛰기 시작해서 11시가 넘도록 뛰어다닌다. 잠도 자지 않는 모양이다

한번은 말해야겠다는 내게 아내는 가지 말라며 말린다. 그래서 계속 참고 있었다. 그리고 가서 이야기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뻔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전에 윗층에 올라갔다. 인지는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확인 하려는 목적이다. 그리고 절구질에 대하여 말하기 위함이다.

인지는 하고 있으나 절대로 미안하다는 말은 없다. 그리고 변명만 늘어놓는다. “그렇지 않아도 내려가려고 했다. 세살짜리 손주가 와 있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그걸 듣자고 올라 간 것은 아니다. “아파트에 살면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최소한 조심하며 살기를 바란다”라고 말하고 내려 왔다. 나를 더 화나게 한 것은 내 앞에서 세 살짜리 아이를 야단치는 모습이었다.

내가 볼 때는 어린아이의 문제가 아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인 당신네들의 문제라고 보여진다. 구차한 변명을 들을려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내 앞에서 보란듯이 손녀를 혼내키는 연극을 보려는 것도 아니다.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디면 된다. 그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절구질도 조심할 것이고, 애가 뛰는 것도 제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서 말하고 왔는데도 더 찜찜하고 기분이 더럽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시끄러움”이 아니라 “무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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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다쓰고 나서 찾아보니 2014년 2월2015년 2월에 쓴 글이 있다. 모두 지금의 윗층집 문제이다.

2 thoughts on “층간소음 2

  1. 김은영

    저~짝 상대들, 어떤 부류인지 알겠습니다.
    알량한 한 마디 뚝 내뱉고 이젠 ‘면피’했다고 생각하겠죠.
    그 순간 최소한의 ‘진심’만이라도 보여주면 될텐데,
    철없는 손주들은 그 잘난 할아버지 할머니로 부터 무얼 배울까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최고로 부끄러운 일’로 가르치는 교육.
    그런 사람에겐 부끄러움을 주는 사회.
    이곳에선 매일 봅니다.

    사모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다녀와서 오히려 더 형편없는 마음이 된 교수님 마음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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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형태 Post author

      3년간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게 사실입니다.
      저나 아내는 둔감한 편입니다.
      우리 아파트에 오신 분들이 가만히 있냐고 핀잔을 줄 정도이니까요.
      저도 아랫집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늘 조심합니다.
      서로서로 배려하고 조심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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