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의대생을 만나다.

By | 2015년 10월 30일

아직은 미완의 20대이지만 그와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면 어느덧 나는 행복감에 젖는다. 아직은 세상적 지위나 완성된 지식은 아니지만 그의 잠재력은 가히 핵폭탄급이다. 수려한 말솜씨는 아니지만, 그의 말에는 20대 중반이라고 하기엔 성숙함이 느껴진다. 말투로 보자면 더 어리지만 말이다.

그가 잠시 자리를 떴을 때 노트북을 들여다 본다. 그동안 읽었던 600여권의 책(교과서까지 포함해 놓았다)의 목록과 다 읽지 못한 책의 페이지까지 표시해 두었다. 일단 읽은 책의 권 수가 남다르고, 그 책의 많은 책이 원서이다. 읽은 책의 종류도 철학, 종교, 사회 과학, 순수 과학, 기술 과학, 예술, 언어, 문학, 지리, 역사 등 다양하다.

이런 젊은이가 이 땅에 있다는 것은 나로선 행복한 일이다. 요즈음 실용주의 학문으로 가는 세상에서 이렇게 다양한 지식을 쌓아가는 젊은이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그가 읽는 책의 권 수 때문이 아니다. 뚜렷한 삶의 방향과 목적, 그리고 실천하는 삶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왜 인생을 이리 답답하게 사느냐?”라던가, “의사가 되면 되지, 뭐가 더 필요해?”라며 핀잔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대화를 해 본다면 그런 생각들은 틀렸다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그의 내면에 쌓아가는 것들은 결코 세상의 화려함이나 편리함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것들이다.

막연히 “나는 무엇이 되겠다”라고 꿈을 꾸는 젊은이들은 많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을 살찌우는데 노력하는 젊은이들은 적다. 세상은 내면이 풍요로운 자의 것이 될 것이기에 그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그와의 만남을 이렇게 적는 것 자체가 내게는 행복이다.

2 thoughts on “어느 의대생을 만나다.

  1. 김은영

    알아봐 주는 선생님과 준비된 제자의 모습입니다.
    저도 행복해집니다.
    이 제자는 분명히 ‘인간다움과 생각있는 의사’가 될 것 입니다.
    격려 많이 해 주세요!
    >> 케이프타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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