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되는 길의 첫번째 관문은 의대에 들어가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의대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 7년전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제도가 도입되면서 대학입시를 통해 의대에 들어가는 것은 더욱 힘들어졌다. 물론 의전원 입시를 통해서 일반 학부 졸업생들에겐 좋은 기회가 되어서 의학을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의과대학은 예과 2년, 본과 4년 과정을 거쳐서 의학을 공부한다. 의전원은 이미 학사이기 때문에 대학원 석사과정의 4년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의전원 석사과정이던지 학부의 본과 4년 과정이던지 간에 배우는 것은 똑같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본과 4년을 2년의 기본의학(강의와 실습)과 임상실습(병원에서 직접 실습)으로 구성된다.
임상실습이 강화되면서 본과 3학년 1, 2학기와 4학년 1학기 동안 이루어진다. 전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의 경우는 학기 당 20주, 모두 60주의 임상실습을 하고 있다. 따라서 강의 중심의 기본의학의 공부는 2년 (학기당 20주 4학기, 합계 80주)의 교육을 받는다. 겨울방학만 2개월 가량있고, 여름방학은 거의 없다. 약 1주에서 10일 정도의 여름휴가(?)가 있을 뿐이다.
그 과정 중에 본과 1학년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다.
처음 의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본과 1학년이 가장 힘든 시간들이다. 특히 의전원 제도가 도입되면서 학부 때와는 전혀 다른 환경을 맞이하게 된다. 엄청난 수업분량이 그들이 처음 경험하는 학습이다. 고등학교 3학년 처럼 정해진 강의실의 정해진 자리(자연스럽게 지정석이 되어가는 경향)에서 하루 종일 수업을 받는다.
그런데 그들이 만나는 수업 중 해부학이 가장 그들을 힘들게 한다. 새로운 용어들과 인체의 개념을 세우는데 쉽지 않은 시간들이다. 개인의 생활이 어느정도 절제되어야만 할 수 있는 공부이다. 거기에 의학을 배우는데 기초가 되는 학문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배우고 잊어도 되는 학문이 아니라 평생동안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 할 의학의 기초이기에 더욱 더 공부에 매진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대충 가르치는 교수들이 없다. 가능한 많이 알려주려는 사랑(?)이 너무 크다. 때론 쉬는 시간도 없이 2시간을 연강한다. 통합강의의 경우 4시간을 강의하는 수업도 있다. 강의를 하는 교수들위 숫자도 많다. 한 통합강의에 수많은 교수들이 들어온다.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수업을 받는다. 쉴 틈 없이 쏟아놓은 지식을 그 시간안에 담기란 불가능하다. 복습할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다. 시험을 보려면 밤을 새워야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본과 1학년을 마칠 수 있다.
특히 본과 1학년 때 꼭 해야 하는 “해부실습“은 더욱 그렇다. 예전보다 실습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매주 수요일 오후와 저녁시간을 해부실습실에서 보내야 한다. 실습실 냄새가 몸에 베어서 그날 저녁은 실습실 밖 잔디밭에서 밥을 시켜먹는다. 학생식당을 갈 수 있지만 스스로 알아서 포기해 버린다.
그러나 이런 모든 과정은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이런 과정없이 의사가 될 수 없다. 되어서도 안된다. 이미 의학을 배우면서 의사로서의 삶을 하나씩 배워가는 것이다. 지치고 피곤할 때도 대상이 사람인 환자를 대해야 하는 의사의 삶은 결코 쉬운 직업은 아니다. 이 길을 택한 의사들 중 대부분은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아무튼 본과 1학년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의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본과 1학년을 거치지 않은 의사가 있다는 그는 가짜이다. 진짜 의사는 모두 본과 1학년을 거친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는 시간… 해부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다시한번 내가 왜 해부학을 가르치겠다고 대학에 남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고 있다.
《PA(진료보조인력, Physician Assistant)가 진료한 것이 고발된 뉴스를 보고나서 적은 것이다.》
*** 2020년 5월 22일 아침에, 이 글을 붙박이로 일단 첫페이지에 고정합니다. 1주일간만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2012년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