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교회 청년들에게 던지는 결혼이야기(원고)

By | 2012년 12월 22일

오늘 예배시간을 보니 원고대로 하면 안될 것 같아서 그냥 제가 임의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이유로 원고를 공개합니다. 혹시 오늘 예배참석하신 분은 아시겠지만, 원고와는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원고는 30분 분량에 맞춘 것입니다. 혹시 수련회 때 이야기할 기회가 된다면 좀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게 될 듯 합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김형태장로입니다. 몇달 전에 대학청년부 담당목사님께 “젊은 부부들에게 관심 많아요”라는 말씀을드린 적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목사님으로 부터 그것을 좀 구체화하자는 의견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난 4월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전북의대를 졸업하고 석,박사과정을 마친 후 군에 다녀온 후 1996년에 전북의대에 교수로 발령을 받아 왔고, 현재 정년보장 교수로 재직중에 있습니다. 전주로 이사오면서 그 때부터 바울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동전주교회였습니다. 그리고 1998엔가는 대학부 부장을 맡은 바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 중 상당수는 저를 잘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장로가 되면서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해야 할까? 나름대로 생각해 오고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지정해 주는 일을 해야겠지요. 다만, 오랫동안 교회에 있으면서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가 “교육”과 “자녀양육”이 아닐까 합니다. 이 두개를 합치면 “자녀교육”이 되겠군요. 아직 미혼이 대부분인 여러분에게 자녀교육을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을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자녀양육도 이닙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려고 합니다.

몇년전 청년들과 돈까스를 먹으면서 “여러분의 가장 큰 고민은 뭐냐?”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대답이 있었겠지만, 예상대로 “이성친구“와 “직장“문제였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자라고 이성을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여 다시 아이를 낳습니다. 그리고 늙어가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제가 의대에서 가르치는 과목 중 “생애주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발생과정을 거쳐 배아가 만들어지고, 태아가 되어 엄마뱃속에 있다가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한 후 늙어가는 과정을 배우는 학문입니다. 인간의 생과 사를 배우는 학문이지요. 이 과정에서 결혼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여기 다윗공동체와 여호수아공동체에는 이제 갓 성인이 된 청년부터 결혼을 한 젊은 부부까지 상당히 긴 연령층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서 어디까지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시간입니다. 아무래도 짧은 강의가 명강의가 될 수 있는 첫번째 요소이기 때문에 가능한 짧게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젊은 청춘들은 사랑에 빠집니다.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빠져 버리고 맙니다. 사랑은 예고도 없고, 마치 열병을 앓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내게 달라지는 것은 휴대폰 요금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불과 같은 사랑에 빠집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돌이켜 보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정말 축복입니다. 그런 사랑에 빠진 경험이 없다면 어떻게 인간이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겠습니까? 이제 나이가 조금 든 청년들에게 묻습니다. 그 불과 같은 사랑이 얼마 가던가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1년 전후 입니다.

의학적으로 사랑에 빠진 남녀의 뇌에서는 주로 본능이 지배하는 영역의 활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Caudate lobe라는 곳이 특히 활성도가 높은데요. 이런 상황이 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눈에 콩깍지가 낀게 아니고 뇌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남녀의 뇌는 “이성”과 관련이 있는 대뇌피질에 활성도가 올라갑니다. 동시에 눈에 콩깍지가 벗겨지고 이제 제대로 된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봅니다. 이제서야 서로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죠. 서로에게 실망도 하게 되고 사랑의 열정도 식어집니다. 이 시기에 헤어지기도 하고, 그저 밋맛한 만남을 유지하기도 합니다. 보통 3년 정도면 모든 것이 정리되곤 합니다. 그러나 더 길게 사랑을 하는 남녀들은 나중에 결혼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때로는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사랑 한번도 못하고 30대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혼의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문가정사역자인 양은순박사는 “만남에서 결혼까지 3년을 생각하면 좋다. 첫번째 1년은 탐색기이고, 2년차에는 발전기, 3년차에는 안정기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통계들이 이러한 내용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사랑은 과학이 아닙니다. 과학으로 분석하려고 해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가 바로 “사랑”아니겠습니까? 그런데 20대 초반에 사랑을 한다면 결혼까지 수년 혹은 10년이 걸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결혼을 전제로 사랑을 한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에게 “연애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20대에는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사회적 구성원으로 살 준비를 해야 하는 단계입니다. 제 말이 마치 “닥치고 공부나 해”라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성에 대한 태도를 배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좋은 시간들이기도 합니다.  좀 정리하자면 “건강한 육체, 건강한 정신, 건강한 영혼”을 가진 사회적 개체가 만들어지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에 대하여서는 나중에 시간을 갖고 여러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혼자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20대 초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시기에 꿈꾸는 것들이 나중에 대부분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꿈을 꾸고 거기에 맞도록 준비하는 과정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그거 아십니까? 노벨문학상이나 과학분야에서의 상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20대에 그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20대에 생각했던 것들을 후에 책으로 쓰거나, 나중에 실험을 통해서 완성하여 노벨상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20대 초반은 열정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고, 사회적 구성원으로 정말 중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20대 중후반 청년들에게

이제 좀 더 나이를 올려 볼까요? 이제 이성친구를 만나고 결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묻습니다. “진짜 결혼을 하고 싶은 건가요?” “결혼할 준비는 되어 있나요?”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지요?” “결혼할 상대는 어떤 조건을 가져야 하는가요?”…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하죠. 맞선 자리에 나온 여성이 남성에게 물었답니다. “혹시 연봉이 얼마세요?”라고. 그러나 남성이 말했답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는데요?”라고.

크리스찬들은 누구와 결혼을 해야 합니까? 다시 질문합니다. “크리스챤이 비크리스챤과 결혼하는 것은 안됩니까?”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죠. “교회에 나이가 든 남녀 청년들이 많은데 왜 다들 결혼 안하고 있는거죠?” 질문이 좀 거슬린다면 부디 용서를 바랍니다. “결혼”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결혼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운 결혼을 생각하면서도 난생 처음 해보는 결혼인 만큼 두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이미 연애를 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 서로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실망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을 말입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결혼을 생각하는 청년들은 몇가지를 생각하고 이성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아마도 이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첫째로, 나와는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것, 둘째로, 둘 다 늙어간다는 전제, 세째로, 사람은 계속 변한다는 것, 네째로, 열정적인 사랑보다는 성숙한 사랑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요. 성숙한 사랑이란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 이해의 폭 등이 커지는 것을 말합니다. 아마도 이제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있는 청년들은 제가 앞서 이야기한 3년의 연애기 보다는 좀 더 짧은 단계를 밟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결혼적령기는 되었는데, 사람을 찾을 수 없다고들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밖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교회청년부에서 남녀 성비는 정말 한쪽으로 치우쳐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쪽으로 치우침이 좀 덜합니다.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비크리스챤과 결혼하면 안되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저의 대답은 “why not?”입니다. 왜 안되냐?는 것이 저의 되질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에 단서를 붙입니다. “만일에 당신이 신앙생활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난 자녀들의 신앙생활이 보장되지 못한다면, 당신이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넘어 당신이 꿈꾸고 있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결혼하십시요.”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반응들이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결혼하지 말라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저는 대답합니다. “결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그런 조건이 되면 결혼하라는 것이지”라고 말합니다.

결혼이 나와 하나님의 관계에 방해물이 된다면 그 결혼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결혼해서 저 사람과 신랑의 집안 모두를 전도해버리겠어’라고. 제 경험이 모두 정답은 아닙니다만, 그렇게 생각하고 결혼하신 분들 중에 결과가 좋은 분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그 에너지를 제대로 된 곳에 사용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왜냐면 결혼을 해서 해야 할 많은 사명들이 앞에 있는데, 종교문제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을 저는 반대합니다.

사실 결혼을 하신 분들은 알겠지만, 서로 다른 남남이 만나는 것이 결혼입니다. 결혼 자체로도 많이 피곤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는 개체들이 만나서 사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연애할 때와는 전혀 다른 환경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수많은 기혼자들이 “결혼은 무덤’이라고 말할까요?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결론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서로 배려하고 참아주고 기다려주엉냐 하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여자에게는 더더욱 많이 짐이 주어지는 것이 우리 사회구조입니다.

또한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뿐만 아니라 먼 훗날 결혼을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에겐 결혼생활에 대한 준비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물론 많은 부분을 부모로 부터 배웁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 부모님들을 보면 따라하고 싶은 부모도 있겠지만, 사실 부부의 역할에 대해 자녀들에게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문제는 그런 부모들의 자녀들은 나중에 부모와 똑같은 모습으로 부부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고 배운 것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결혼을 준비하고 있거나 갓 결혼한 신혼들에겐 특별히 전문가들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결혼한 청년들에게

결혼자체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이제 한집에서 살아갑니다. 물론 사랑을 해서 결혼한 것이지만, 서로에 대한 차이가 점점 커져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또다른 놈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았는데 더 센놈이 나타났습니다. 엄마 아빠를 닮은 것 같은데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부부는 서로 “누굴 닮아서 이래요?”라고 서로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이 아이는 어느 행성에서 왔을까요?

이렇듯 가정은 두 사람의 문제에서 이제는 가족의 문제로 커집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 두 집안의 문제까지 젊은 부부는 감당을 해야 합니다. 이 시기가 되면 집안 어른들에게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결혼생활이 부정적이다라는 것은 절대로,,절대로 아닙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인간사에서 누구에게나 있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자연스러운 일로,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힘든 시간들로 만들어 버리곤 합니다. 결국은 결혼생활에 준비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 준비라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결혼후에는 예측불가능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준비를 한다고 해도 예측문제이외의 문제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지니까요. 그 시기에 결혼생활만 하나요? 사회적으로도 가장 바쁘고 힘든 시기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가장 말단직원이고, 윗사람의 눈치도 봐야하고, 온갖 잡무는 다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집에 와서 휴식을 가질 수 없다면 더더욱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잠깐 제 이야기를 하죠. 저는 29살에 결혼해서 다음해에 첫애를 낳았고, 바로 다음해에 둘째를 낳았습니다. 모두 두 아들이고 현재는 일반대학으로 따지면 3학년, 2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나중에 젊은 부부들을 만나면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부분인데, 저도 의과대학교수로서 정말 바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제가 처음 발령 받고 5-6년간은 밤 11시 이전에 퇴근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주중에는 늦게 퇴근하고 토요일과 주일에는 교회에서 살았으니 저는 하숙생과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그 뒤로 캐나다에서 2년간 살면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자리매김을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집이 편하고 좋습니다. 그리 좋은 아파트는 아니지만,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나중에 자매들에게는 제 집사람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제 집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책에 담고 있는데 책 제목이 “내 아내의 별명은 나다나엘”입니다. 지혜롭고 현숙한 아내이죠. 저는 아내 때문에 사람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주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라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자연스럽게 긴 시간동안 훈련되는 것 같습니다. 부부지간에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위기때 대처능력”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가정이나 부부에게 어떤 위기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얼마나 지혜롭게 헤쳐나가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DNA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혹시 결혼한 자매들 중에서 남편이 그런 면을 생각해 보십시요. 시아버지와 똑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기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긍정적으로 반응하냐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마도 저는 이런 부분은 제 아버지로 부터 좋은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 부분도 나중에 젊은 아빠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저는 여러분들 보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관심이 더 많습니다. 우리보다 다음세대, 그 세대보다 다음세대에게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자녀교육은 좋은 부부관계에서 옵니다. 부모의 삶이 건강한 모습을 보일 때 자녀교육은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 되는 일은 여러분의 부부가 잘 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부부싸움을 해대는 가정에서 좋은 자녀가 나오기 힘듭니다. 좋은 대학은 갈 수 있겠지만, 건강한 사회인이 힘들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결혼 후에 청년부에 남아 있는 젊은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시간을 내주십시요. 저는 주위에서 자녀교육에 성공했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정말 사회에서 귀하게 쓰이고 존경받을만한 그런 사람들이 될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면서 굳이 하지 않았어도 될 시행착오들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젊은 부부들에게 저의 감추고 싶은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서 더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중추적인 허리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시기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교회에 따라서는 40대까지 청년부, 50대부터 장년부로 부르는 곳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여러분은 그 만큼 젊고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저는 결혼 이후에 마음속에 “균형”이라는 단어를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교회와 집과 직장에서 균형잡힌 삶”을 꿈꾸어 왔고, 지금껏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마무리하며

대학생인 청년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순교를 해야 칭찬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해외봉사을 가져 순교했다면 과연 사회가 여러분에게 칭찬을 할까요? 제가 생각할 때는 여러분이 공부하다가 순교해야만 그게 여러분에게 있어서 소중한 순교입니다. 각 시기별로 열심히 해야 할 사명들이 있습니다. 대학생인 청년들은 학업에 열중하는 것이 균형이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 청년들에겐 집과 교회, 그리고 직장에서 균형잡힌 삶이 중요합니다.

저는 기혼자인 청년들과는 그런 부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대학에서는 지도교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도”라는 단어는 월등히 뛰어난 사람이 다른 사람들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학생이 교수보다 뛰어나다면 지도교수란 말이 맞을까요? 물론 학문적 위치로 보면 교수가 늘 상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인격적인 면에선 이게 역전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제가 젊은 부부들과  만나려고 하는 것은 제가 우위에 있어서가 아닙니다. 지도교수라는 표현보다는 지원교수라는 것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인생을 좀 더 살아온 선배로서 여러분과 제 삶을 나누고 싶습니다. 물론 여러분의 삶도 저와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여러분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가르치는 개념이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지원해 주고 싶은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직장에서 가정에서 또 교회에서 중추적인 역할들을 감당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를 살아갈 것입니다. 좀 더 균형있는 삶을 위해 앞에 걸어간 인생의 선배들과의 만남을 통해 더 균형잡힌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또한 젊은 부부들이 함께 삶을 나누고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모임을 상상하며 사모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러분이 청년부를 떠나 이제 장년부로 옮겨갈 타이밍을 맞추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디테일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여러분에게 제가 화두를 던졌습니다. 앞으로 교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미래의 바울교회를 꿈꾸며 나가시를 소망해 봅니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재철 목사님은 책에서 청년을 “현존하는 미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바울교회의 미래입니다. 그것도 현존하는 미래입니다. 여러분의 지금의 모습이 바울교회의 미래를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한국의 교회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현존하는 미래인 청년 여러분과 삶을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기도하고 오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 바울의 청년들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귀한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바울의 청년들을 축복하시고 이들이 교회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복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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