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해부학이라는 과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인체의 구조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부학시험이라는 것은 뻔하다. 다만, 학생들에겐 처음 듣는 구조물의 이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어려울 뿐이다. 강의실에서 배우고, 시험을 보고, 해부실습을 하면서 구조물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이 생기면서, 인체에 대한 전체적인 구조가 머리속에 남게 된다.
강의실에서 배운 것 만으로는 절대로 충분하지 않다. 시험을 치르게 함으로서 스스로 학습을 통해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다. 물론 시험을 보았다고 다 알아지는 것도 아니다. 해부실습이라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따라서 의학의 시작이 “해부학”이라고 말하는데는 무리가 없다.
해부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시험출제는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다. 올해는 서술형 주관식을 모두 없애고, 단답형 주관식과 5지선다형 객관식을 출제했다. 아마도 내가 교수가 된 이후로 객관식을 출제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나는 해부학구조물의 명칭은 직접 펜으로 써봄으로서 명칭도 빨리 익숙해진다고 생각하기에 객관식 문제출제는 피해왔다.
그런데 올해는 객관식 문제를 출제해보았다. OMR카드를 통해 시험결과를 분석해보려고 한다. 물론 16문항 밖에 출제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좋은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문제는 모두 단답형 문제이다. 물론 생각을 하고 써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해부학의 특성상 구조물의 이름을 외워서 써야 하는 문제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예전의 문제를 전혀 참고하지 않고 새롭게 출제했다. 아마도 교수가 되고 나서 시험출제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문제가 좋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자율학습태도가 더 발전한다면, 좀 더 응용문제들을 출제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아직은 시기상조이다. 따라서 단순하게 해부학구조에 대하여 물어보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오랜만에 1996년에 교수가 된 후에 박수동화백의 만화를 패러디하여 그린 그림을 이 글을 쓰면서 보게 되었다. 이 그림에는 해부학을 가르쳐야 하는 교수로서의 마음이 들어 있다. 다시금 23년의 세월동안 내 자신을 돌아다 본다. 원래의 마음을 잘 간직하면서 발전해오고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라는 질문을 시험출제를 마무리해놓고 내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