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흔히 “불편함”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의 삶은 분명히 “편함”을 추구함에도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편함”을 만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우리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지 우리는 미쳐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 삶의 불편함은 수많은 편리한 도구들을 만들어내는 발명의 과정들을 만들어 냈다. 그 편리함의 추구는 오늘날 우리에게 엄청난 물건들을 쏟아냈다. ‘이렇게 편리해도 되나?” 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라는 것이 어떤 하드웨어적인 문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불편함이 있다.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불편함을 비롯하여, 경험과 지식 그리고 성장배경이 다른 사람들끼의 불편함은 심지어 부부사이에도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내 자아의 불편함이다. 우리가 사회에 살아가면서 불편한 것 중 하나(일반적인 사회적 성향에서는 불편해서는 안될 것 같은)가 바로 “자아에 반하는 불편함”이다. 자신의 자아(자신은 분명히 그것이 바른 길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자아)에 반하는 사회적 행동(누군가는 그것을 사회생활이라고 부른다)에 대해 발생하는 “몹시 불편함”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예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것보다 더 불편함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불편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냈던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말씀하신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회개)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 행동은 자신에게 상당한 불편함을 가져다 준다. 자신의 많은 것을 꺽어야 한다. 자신의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신다. 바로 “불편함”을 말이다. 그 불편함을 겪은 후에 오는 “평안”을 위해서이다.
우리는 흔히 그 불편함을 겪지 않으려고 자신의 잘못을 부정한다. 자신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생각에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돌직구를 날려버린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한 죄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많은 사람도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도 아니고…. 모든 사람으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회개”라는 분명한 “불편함”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앞에 온전하게 나올 수 있는 셈이다. 지식이나 선행이나, 또는 돈으로도, 더우기 종교로도 해결할 수 없다. 회개의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 그 해결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으신다. 왜냐면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고, 성경에 기록한 대로 3일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해야 할 그 모든 불편함의 중심에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는 불편함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두 감당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회개 이후에도 계속해서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 크던 작던간에. 그러기에 우리는 반복해서 그 불편함을 계속 경험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불편함이 우리을 매일 매일 새로운 자신으로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사랑인 셈이다. 전도를 하다보면 흔히들 이 과정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한다. 교회는 그저 편안하게 마음의 수양을 쌓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다. 철저한 회개를 시작으로 하는 불편함을 경험하는 곳이다. 그 불편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을 조금씩 닮아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얻는 기쁨은 세상의 그 어떤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얻게 된다. 불편함 뒤에 따라오는 커다란 선물처럼 말이다.
불편함(uncomfortable)의 진실은 바로 죄사함으로 인해 얻는 참된 기쁨과 평안일 것이다.
간혹 사람사이에서도 이 불편함의 문을 지나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무조건 덮고, 모른 척, 아닌 척, 대충 넘어가는 식이 아닌… 그 불편함의 문을 정면 돌파할 필요가 있다. 종교적 회심만큼이나 큰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