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계속 자란다. 그들은 약하고 작은 존재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몸도 마음도 커간다. 나는 유아부에 새로 온 아이들을 위한 기도에서 빼지 않는 내용이 “이 아이들이 몸이 자라듯 지혜와 믿음이 자라길” 소망하며 기도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서 어른이 되어 간다.
“어른”이란 “다 자란 사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몸이 다 자란 사람이다. 또한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을 갖고 있다. 몸이 자랐다고, 결혼을 했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위치에 섰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아이들의 성장 속도가 빨라졌다. 그들이 갖는 지식의 수준도 예전과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어른들은 정지해 있다. 이런 문제는 학교에서 많이 나타난다. 선생님들은 말한다. “요즈음 애들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다”라고 말이다. 나는 반문하고 싶다. “그들의 속도에 맞추려고 노력은 해 보았는가?”라고 말이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그 부모도 성장해야 한다. 육체적인 성장은 끝이 났고 노화가 시작되었음에도 생각과 마음, 영혼이 커가야 한다. 그것이 멈추어 있으면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 자녀와의 갈등만 만들어질 뿐이다.
비단 집에서 뿐이랴!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르치는 선생(先生)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먼저 나와 먼저 살아본 사람이다. 인격적으로 더 뛰어나서도 아니고, 능력이 더 뛰어나서도 아니다. 먼저 나서 먼저 배웠기 때문에 지식은 앞서 갈 수 있다. 그러나 배우는 학생이 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일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통한 판단으로 학생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해 버리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선생은 먼저 나서 먼저 자랐기 때문에 사회적 측면에서 더 뛰어날 수 있지만, 타고난 능력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어야만 먼저 세상에 나온 사람으로서 그들을 이끌 수 있는 것이다.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의 DNA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판단으로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자신의 위치보다 훨씬 더 나은 위치에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생각이 자라야만 가능하다. 욕심을 부리라는 것이 아니다. 훨씬 더 포용력있는 마음과 미래를 바라보는 눈, 그리고 기다리고 인내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어른도 아이들이 성장할 때 함께 성장해 가야 하는 것이다.
많은 어른들은 자신의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만으로 남은 생애를 살아가려고 한다. 세상은 좁아지고 살기 힘든 고행의 길이 될 수 밖에 없다. 한번 있는 인생 멀리 바라보고 넓게 생각하는 어른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커가는 아이들의 속도에 맞추어 자신도 성장할 수 있고, 다음세대와의 소통을 이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