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 세단어 “훈육”, “체벌”, 그리고 “학대”는 자녀와 부모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들이다. 요즈음 아이들을 학대하는 부모들이 늘어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도 자기자식을 뭐하고 하는데 삼자인 내가 어떻게 간섭할 수 있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많다. 서로 다른 뜻의 이 세단어의 문제점은 그 경계가 애매모호해지고, 어디까지가 훈육이고, 어디까지가 학대인지 가해자인 부모나 피해자인 아이들까지도 혼란스럽다.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 훈육(訓育) :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쳐 기름.
- 체벌(體罰) : 몸에 직접 고통을 주어 벌함. 또는 그런 벌.
- 학대(虐待) : 몹시 괴롭히거나 가혹하게 대우함. 또는 그런 대우.
이렇게 구분이 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는 이 단어들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어느덧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아니 “범죄”수준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녀에게 훈육은 필요하다. 세상을 갓배워가는 아이들에게 바른 길을 알려주고 사회적 개체로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부모로서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훈육”이 “학대”이거나 “학대에 가까운 행동”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은 아이를 학대하는가?
- 당신은 아이를 왜 체벌하는가?
- 당신이 아이에게 행하사는 체벌이 학대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 당신의 체벌이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 당신이 아이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 학대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 당신은 무슨 기준으로 아이들의 행동의 자잘못을 평가하는가?
- 당신의 훈육이나 체벌이 분풀이성은 아니었던가?
- 당신은 바르게 살고 있는가?
이런 몇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잘못된 행동이나 그릇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시작한 훈육은 훈육의 수준을 넘어 체벌을 가하게 되고, 그 체벌의 수준은 학대로 발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한 행동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무엇이 잘못인지를 인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부모가 명확하게 그 기준을 상세히 설명해 주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그 전에 야단부터 치는 부모가 많다.
“너는 왜이래?”
“하지마!”
아이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식도 못한 채 야단부터 맞기 시작한다. 아무리 말귀를 못알아먹는 아이들이라도 부모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하고 그 기준을 세워주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인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아이들의 기질이 다 다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다.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 일하는 아빠들, 집안일과 아이들의 양육에 지쳐버린 엄마, 그 틈바구니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이런 구도속에서 우리는 이 땅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 좀 더 부모의 역할과 모습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몇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 어떤 경우에라도 체벌은 생각해 보자. 간단한 체벌이 나중에 학대로 이어진다는 점을 잊지 말자.
- 어떤 경우에라도 매질은 안된다. 매 또는 손으로도 절대로 아이들의 몸에 대서는 안된다.
- 언어적 훈육도 학대가 아닌지 생각해 보자. 윽박지르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도 하지 말자.
그렇다면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것이다. 왜 말을 듣지 않는지, 왜 떼를 쓰는지, 왜 계속 사고만 쳐대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훈육은 양육과 함께 시작한다. 태어나면서 부터 양육과 훈육은 시작되기 때문에 아이가 이미 세살이 되어버렸다면, 그 전에 그런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였다면 아이는 당연히 문제를 일으킬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려운 문제이다.
때를 이미 놓치고 나서 뭔가 바로 잡아가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신혼부부에게 해야 하는데, 다들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 시작하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냥 답답함에 몇자를 적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