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는 정규버스는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오는 곳이었다. 그 버스들은 모두 녹진항(지금 진도대교가 있는 울둘목의 서쪽 마을)에 배에서 내리는 손님을 맞으러 가는 버스들이다. 즉, 하루에 배가 세번 온다는 뜻이다. 목포와 제주, 혹은 거문도를 오가는 배들의 시간을 맞추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신작로는 하루 종일 차가 다니질 않는다. 간혹 관용짚차가 가거나 전화로 불른 택시가 있을 뿐 신작로는 비어 있다. 따라서 신작로는 어린이들이 노는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도 교통사고는 난다(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게 될지도 모른다).
신작로에서 우리가 탈 수 있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자전거, 니어카, 달구지 등이었다. 또한 소를 길들이기 위하여 끄는 나무로 만든 썰매 모양의 장치도 간혹 탈 수 있는 도구였다.
어느날 니어카에 사람을 태우고 돌아가면서 끌어주거나 밀어주었다. 시골에서 놀이시설이 없던 아이들은 줄곧 이런 것을 하고 놀았다. 니어카 끌어주는 놀이가 한참 재미있을 무렵 아이들은 꾀를 내기 시작했다. 이것을 손으로 밀지 말고, 손잡이는 뒤쪽에 한사람이 잡고, 앞에 부분에 줄을 묶어서 끌어 당기기로 한 것이다. 아래 그림과 같이.
이렇게 한참 니어카를 타던 중 앞에서 끌던 두 아이들이 너무 세게 끌었고 속도가 너무 빨라지자 뒤에서 손잡이를 잡고 이던 아이가 손잡을 놓아버렸다. 니어카는 뒷쪽에 있는 손잡이쪽이 하늘로 쏟구치면서 앞쪽으로 쏠리며 전복되고 말았다. 니어카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땅바닥에 엎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앞에서 끌던 아이는 바로 나와 기준이였다(“침을 두번 뱉은 기준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다른 아이들은 손바닥과 팔꿈치, 무릎이 살짝 까지는 수준에서 머물렀는데, 한 아이만 입술이 깨지고 얼굴에 찰과상을 입었다. 니어카에 탄 아이들 중 가장 어린 아이였다.
그 아이는 곱게 생긴 남자아이였다. 머리도 짧게 자른 머리가 아닌 단정하게 자른 도시형 머리를 하고 있었다. 얼굴도 하얗기 때문에 시골에 살지 않는 아이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니어카 사고가 났던 길 근처에 있던 둔전교회의 목사님 아들이었다.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였다. 목사님이 부임해 오신지 얼마되지 않았었는데, 이제 갓 동네 아이들과 친해지려는 순간이었는데 그런 사고가 나고 말았다.
다친 아이들은 모두 우리집으로 몰려갔다. 가서 약을 바르고(그래봤자 머큐롬을 바르는 수준) 끝이 났지만, 그 아이만 상처가 깊어서 약을 바르고 붕대를 붙였다. 아마도 입술이라서 꿰매지는 않았다.
그 사건은 연루된 아이들이 모두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앞에서 줄을 끌었던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해프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