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우리나라가 가난했다. 당시 우리나라 GNP가 1970년 기준으로 243불(당시 북한은 286불)이었다. 참고로 작년(2013년) 기준 GNP는 24,328불이었다. 아무튼 지금 세대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 이렇게 비교하면 된다. 2013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말라위가 222불(183위), 그 다음이 부룬디로 303불이다.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니 각 개인의 가난은 어땠는지 알 수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토끼를 키우도록 장려했다. 당시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토끼를 열심히 키워서 팔아서 닭을 사고, 닭을 잘 키워서 돼지를 사고, 돼지를 잘 키워서 소를 살 수 있다. 토끼를 잘 키우면 결국 소를 산다.”라는 꿈을 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가축을 키워보라고 독려하셨다.
따라서 당시에 집에 토끼장을 만들어 토끼를 키우는 친구들이 많았다. 키우기도 쉽고 빨리 자랐기 때문이다. 토끼를 키워서 돼지를 샀다는 이야기는 못들어 봤지만, 아이들 스스로 토끼를 키워보는 일은 많은 것들을 배우게 했으리라고 본다.
우리 동네에 나보다 두세살 많은 형이 한명 있었다. 자신의 개 이름을 “헬로우“라고 불렀던 바로 그 장본인이다. 이름이 기봉인지 귀봉인지 아니면 다른 이름인지 헷갈리지만 귀봉인가 아닌가 싶다. 아무튼 귀봉이는 염소를 키웠다. 그런데 어느날 염소가 설사를 하면서 배가 불러왔다.
그런 말이 있다. “소가 된 똥을 싸면 죽고, 염소(양)가 설사를 하면 죽는다”라고 말이다. 장질환이 생기면 염소는 꼼짝없이 죽고 만다. 배가 불러오자 귀봉이는 대나무를 잘라 대롱을 만들었다. 한쪽끝을 날카롭게 잘랐다. 그리고 염소를 붙잡고 그 대나무로 배를 찔렀다. 거짓말처럼 대나무 대롱을 통해 배안에 있던 가스가 분출되었다. 불룩했던 배가 조금 가라앉자 계속 울어만 대던 염소는 조금씩 걷기도 하고 풀밭을 걷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염소의 배는 다시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죽고 말았다.
배에 대롱을 꼽았던 것은 오늘날 의학용어로 gastrostomy(위창냄술)이나 colostomy(대장창냄술), ileostomy(돌창자창냄술)과 같이 창자와 바깥 환경을 대롱(호스역할을 하는)을 통해 연결해주는 일종의 시술이었던 셈이다. 지금처럼 수의사가 있었던 시절도 아니고, 염소나 양이 설사를 하면 죽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시절, 귀봉이네 염소는 귀봉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죽고 말았다. 염소 배안에서 밖으로 분출되었던 냄새는 아직도 내 뇌리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