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79] 보건지소 의사선생님

By | 2014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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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이 다가오는 어느날 밤이었다. 몇몇 아이들이 모여서 불놀이를 하고 있었다. 횟게등에서 간척지 논들사이를 가로질러 도깨불치쪽으로 흐르는 큰 도랑이 있다. 이 도랑의 일부는 허리 높이의 둑이 있다. 그 둑은 좋은 바람막이였고, 우리는 겨울밤의 바람으로 부터 그 둑 아래에 도랑에 피해 있었다. 그 도랑은 겨울에는 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도랑안에서 놀랐다.

한참 놀고 있는데 달빛아래 어떤 아저씨가 나타났다. 젊고 키가 큰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술이 많이 취해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지금 술이 너무 많이 취해서 방향을 잘 모르겠다. 너희들이 나를 금골리 보건지소까지 가면 돈을 주겠다”라고. 세명의 아이들이 따라 나섰다.

보건지소는 금골리에 있는 농협창고에 붙어 있다(나중에 우리집이 이사를 간 곳과 불과 5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그 아저씨는 그곳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였다. 그런데 그곳에 다다르자 다른 제안을 하는 것이다. 지금 아궁이에 불을 지펴주면 돈을 더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먼저 보건지소를 나왔다. 왜냐면 너무 늦으면 부모님이 걱정을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는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을 어느정도 제한했었다.

두명의 아이들이 거기에 남아서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그들이 얼마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다음날 아이들이 군것질 하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달빛은 빛추었지만 겨울밤 금골리에서 장언리까지 오는 길은 가깝지는 않다. 더구나 고개를 조금 돌리면 횟개동 아래 상여집이 보이고, 또 연산리쪽에는 공동묘지가 있었기 때문에 땅만 쳐다보고 열심히 걸어서 집으로 왔다. 거기까지 따라만 가고 돈도 벌지 못한 채 무서움만 느낀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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