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91] 하관을 보다

By | 2014년 9월 23일

초등학교 2학년 때라고 기억된다. 친구들과 함께 놀던 중 우연히 상여를 따라가게 되었다. 상여는 마을을 지나 연산리쪽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공동묘지로 갔다. 돌아가신 분은 “정길이 아저씨”이다. 정길이 아저씨가 아침에 소달구지를 몰고 나갔다가 갑자기 쓰려져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때 아저씨는 젊었다. 아마도 30대 중반이 아니었을까? 큰 아들이 나와 나이가 비슷했기 때문에 그렇게 유추해 보는 것이다.

상여가 무서워서 마을에 상여가 지나가면 숨었던 내가 어쩌다가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 틈에 끼어 공동묘지까지 가게 된 것이다. 진도는 특이하게 관채 매장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육지에서는 관을 매장한다. 진도에서는 하관할 때 관에서 시신을 꺼낸다. 시신은 수의를 입힌 후에 다시 천으로 감아서 얼굴이 보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의 형체는 그대로 보인다. 약간 누런색 베로 싸인 시신을 보았다. 아무리 천으로 싸여있다고는 하지만 처음 시신을 보는 거라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나무관은 하관을 하는 곳 옆에서 불태운다. 가져간 옷가지도 태운다. 이런 모든 기억들은 내게는 무서운 기억들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모든 광경을 보게 되었다. 시신을 넣고, 반듯한 돌들을 덮는다(오늘날에는 잘 가공된 대리석으로 한다). 그리고 흙을 뿌리면서 계속 흙을 밟는다. 그 흙을 밟으며 슬프게 우는 정길이 아저씨네 아줌마를 보았다. “나 혼자 어찌 살라고~!”하면서 매우 슬프게 곡을 하며 흙을 밟고 있던 아줌마의 모습이 생생하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아줌마는 농사를 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여자 혼자서 농사일과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던지 아줌마는 매우 사납게 행동을 했다. 말도 행동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어려웠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아니, 지금도 이 땅에서 여성이 혼자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세상이다.

여기에 적지 못하는 그 아줌마의 더 슬픈 이야기들이 있다. 성경에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라’고 왜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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