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고마운 마음에 마음이 먹먹해질때도 있다. 이유는 세가지이다. 모두들 기피하거나 늦게 하는 결혼을 해주었을 뿐 아니라, 양육 문제로 아이들을 잘 낳지 않는 사회에서 아이들 낳아주고, 더 나아가 그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니 그 얼마나 귀한 부모들인가?
요즈음 교육비 많이 들어간다고, 양육비 많이 들어간다고, 또 자신들만의 인생을 즐기겠다고, 다들 자녀 낳기를 꺼려하는 세상에서 유아부 부모들의 모습은 내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우리사회를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저출산의 해결책을 정치적 논리가 경제적 논리로 풀어가려고 해서는 안된다. 자신이 이 세상에 있기까지 자신들의 부모들이 했던 것 처럼 최소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모든 것을 국가에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된다. 자녀를 키우며 얻는 기쁨은 자신이 얻고, 나머지 부양비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논리는 잘못된 논리이다. 자신의 기쁨이 되는 자녀 양육에 대하여 적극적이고 자기희생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자녀를 하나만 낳아서는 안된다. 최소 2명을 낳아야 한다. 숫자적으로는 합계출산율이 2.1명이 되어야 한다. 이를 대체출산율(replacement birth rate)이라고 하는데, 이 숫자가 유지될 때 최소 인구수가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맛벌이를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구조이기 때문에 특히 두번째 아이를 갖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높다. 그러나 이 땅의 미래가 자손들에게 있다는 역사적 사명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양육도, 교육도, 결코 쉽지 않은 세상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에게 분명한 역사적 요구이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요즈음 유아부 부모들과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깊은 행복감에 빠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