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으로서의 품격”이다. 사람으로서의 품격이 바로 인격이다. 인격은 타고나는 천성과 후천적 교육에 의해 형성된다. 천성은 교육 못지 않게 한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후천적 교육으로도 덮을 수 없는 DNA에 숨어 있는 인격의 요소들이 성장하면서, 아니 다 자란 후에도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부모의 행동도 DNA에 넣어져서 유전이 된다는 사실이다.
후천적 교육은 가정교육과 학교교육, 그리고 사회규범에 따른 훈련의 결과로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가정교육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대부분이 가정교육에 의한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인격은 변할 수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대하여 연구하고 수많은 글들을 써오고 있다. 환경과 교육에 의하여 변할 수 있다라는 생각과, 그렇지 않고 인격을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인간의 요소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천년 전에도 이런 고민을 했었기에 성선설이나 성악설과 같은 말들이 생겼을 것이다.
나는 인격을 이렇게 보고 싶다. 한 개체안에 들어 있는 죄성(나는 인간은 죄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믿는다)이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느냐하는 것이 바로 인격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죄성이지만, 삶 가운데 나타나는 유혹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 형성된다고 본다. 유혹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 자체도 DNA에 숨겨져 있는 요소이며, 그 반응을 조절하는 것이 삶의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유혹은 크게 두가지로 본다. 하나는 취득하고자 하는 유혹이고, 또 하나는 자기방어적인 행동이다.
이런 두가지의 특성으로 나타나는 인격이 나와 내 주변을 보면, 잘 변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했는가 싶으면 다시 제자리로 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특히 타인에 대하여 보여주는 인격의 형태는 잘 변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는 그럴 듯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결국의 모습은 비인격적 행동을 보이고 만다. 특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일수록 그것이 잘 보인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간다. 자신의 행동이 피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왜냐면 늘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기전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런 자신의 행동이 주변사람들이나 어떤 공동체에 이롭다고까지 생각한다.
인격이라는 본질은 과연 변할 수 있을까? 요즈음 많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내 스스로 이것에 대한 지식이 없다. 단지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안타까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