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학년도의 학사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까지 성적입력을 마쳐야 하고, 내일까지 출석부 등 서류를 행정실에 제출하면 된다. 물론 다음주에 학생들이 자신들의 성적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그 다음에 교수회의를 통해 진급사정을 하게 된다. 매년 이렇게 학사일정이 진행된다.
의대나 의전원은 유급제도가 있다. 우리대학은 대체적으로 유급이나 휴학(의대에서 휴학은 거의 유급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이 거의 없다. 2013학년도에 유급자수가 많았던 것 이외에는 대체로 3~5% 가량이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유급한다. 물론 2% 이내였던 경우도 많다. 대체적으로 그랬다는 것이다.
항상 연말연시는 많은 학생들이 유급에 대한 걱정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렇게 걱정하는 학생 숫자와는 달리 대개는 몇명이 유급을 한다. 유급제도는 사실 당사자에게는 큰 상처를 남긴다. 물론 학습을 소홀히 했거나,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런 이유로 상처도 크게 받는다. 왜냐면 여태 학교를 다니면서 최상위권에 있었던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가능한 유급학생 숫자를 줄이려고 한다. 과연 유급제도가 필요한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의대교육의 특성상 재이수나 재수강이라는 제도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급제도가 존재한다. 물론 쉽게 유급을 시키지 않는다. 재시험도 치르게 하고, 시험보는 횟수도 많다. 시험 한번 보고 나서 유급을 시키는 일은 없다. 더구나 지금처럼 통합강의 형태에서는 많은 교수가 참여하기 때문에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경향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교육하는 내 입장에선 유급을 결정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다. 물론 내가 가르치는 과목 때문에 유급을 하지 않는다. 유급을 하는 학생들의 성적은 대체적으로 대부분의 과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 올해부터는 점수제가 아닌 학점제로 성적을 입력한다. 5점의 차이도 같은 학점을 받거나, 1점의 차이로 다른 학점을 받기도 한다. 나는 학점제를 반대해 왔다. 의대 만큼은 1점의 차이가 매우 크다. 물론 연세의대처럼 점수가 아닌 pass 또는 fail로 학점을 줄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연세의대의 학생특성에는 적용될 수 있는 제도이다. 우리는 다르다.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고 있노라면 많은 감정들이 일어나곤 한다. 그런 과정은 늘 반복되는 것이지만, 2014학년도 1학년들은 전체적으로 공부를 덜했다는 판단이다. 자신들이야 열심히했다라고 말하겠지만(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님) 다른 학년에 비하여 성적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책이 바뀌었고, 가르치는 교수들이 조금 바뀌었다. 야마(?)에 의존하는 학생들의 특성상 바뀐 환경으로 인해 학습부진을 가져왔다는 것은 일반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논의를 거쳐 최종성적을 마무리했다. 정말 열심히 해준 학생들이 많다. A+가 아니라 A+++를 주고 싶은 학생들도 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학생들도 있다.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결과는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있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올 해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하는 것이 좋겠는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내 스스로 반성도 한다. ‘너무 떠먹여주는 교육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유급한 학생들은 마음의 상처를 이기고 다시한번 심기일전해 주길 바라고, 진급한 학생들도 좀 더 자신의 모습을 냉철하게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래본다(자신이 받은 성적이 절대로 자신의 실제 성적은 아니니까 말이다). 의대를 다니는 목적이 진급은 아닐테니 말이다. 의대생이 “의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사기꾼이 되거나 살인자가 된다”라는 교훈을 다시금 새겼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