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기일을 맞이하여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그 자리에서 해외에 있는 세째딸을 제외하고 나머지 형제들이
“아버지와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한가지씩 나누기로 했습니다.
많은 추억들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아름다움 추억을 무엇일까?를 몇개월간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은 기억들로 가득차있는 아버지와의 추억 중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추석때의 일을 가장 많이 생각했습니다.
추석…
아마도 당시만 해도 추석은 우리 고유의 명절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지금처럼 서울쪽에 사람들이 지방으로 내려오는 느낌 보다는…
가까이 사는 가족들이 모이고…
음식과 새옷을 입는… 그런 명절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추석 선물로 아버지께서 축구공을 사주셨습니다.
당시에 축구공은 모두 고무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하나정도 소장할까 말까한 가죽 축구공(최근까지 공식 축구공이었던)을 사오신 것입니다.
그 당시에 꿈이 축구선수였더 저로선 정말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선물이었습니다.
왜 사주셨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추석에 맞춘 선물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날 길거리(신작로라고 하는 큰 길)에서 공을 차다가 이웃집 담장인 탱자나무가시에 찔려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걸 수리하기 위해…
구두수선집에 가서 육각형의 가족 하나를 뜯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다시 자전거 수리점에 가서
가죽속에 있던 튜브를 수선했습니다.
말 그대로 빵구를 때린 셈입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구두 수선집으로 가서… 떼어내었던 가죽 한조각을 붙였습니다.
그런 후에 다시 자전거 수리점에 가서 바람을 넣었습니다.
아까운(밤에 안고 자기에도 아까운) 축구공이 조금은 상처가 생겼지만…
그 가죽이 닳아질 때까지 그 축구공은 늘 저와 함께 다녔습니다.
그 추억을 저는 1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먼친척 형이 “외국인”을 집에 데리고 와서 소개해 준 날이기도 합니다.
외국인이 집에 오자… 동네 사람들이 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담장 밖에서 기웃거리며 호기심어린 눈으로 외국인(미국인이었음)을 쳐다보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큰 누나에게
영어 교과를 가져와 읽게 했던 기억도….
그날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외국인 무릎에 앉아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