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라면이 먹고 싶으면 가는 곳, 재영이네. 그 집은 동물원 주차장 옆에 있는 십여개의 작은 식당 중 하나이다. 오늘도 라면을 먹으려고 갔다. 함께 간 동료 교수는 칼국수를 시키고, 나만 라면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습관처럼 꿀꽈베기 한 봉지와 꼬깔콘 한 봉지를 먹고 있었다.
모자를 쓰고 수염이 초췌하게 긴 60살 전후의 남성이 들어온다. “저, 천원만 빌려 주세요”라고 대뜸 말한다. 그러더니 다시 “저 2천원만 빌려 주세요.”라고 계속 보챈다. 전형적인 알콜중독자(alcoholism)의 모습이다. 나에게 말했다가, 또 다른 교수에서도 계속 보챈다. “사장님, 2천원만 빌려주세요. 집에 가야해요”라는 말을 계속 반복한다.
만일에 돈을 주면 그 돈으로 가게로 가서 바로 소주를 사먹을 것이 뻔하다. 내가 제안을 했다. “내가 돈을 줄 수는 없고, 칼국수를 사줄테니 식사를 하세요”라고 말이다. 그런데, “제가 칼국수 먹으면 2천원 주실거죠?”라고 다시 말한다. 계속해서 반복한다. “아니요. 돈은 드리지 않고 식사만 사드립니다.”라고 답을 했다.
그렇게 해서 칼국수가 추가로 주문이 되고 칼국수가 나왔다. 칼국수를 조금 먹더니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와 반주를 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물컵에 소주를 얻어서 온다. 그리고 우리 옆좌석에서 점심과 막걸리를 먹고 있는 아저씨들에게 계속 말을 건다. “저 막걸리 한잔만 주세요”라고 말이다. 아저씨들이 인상을 찔푸린다. 기어코 막걸리를 얻어 먹는다.
식사를 하면서 계속 말을 해댄다. 그 아저씨들이 “입을 닫고 식사나 해”라고 말하더니, “아니지, 입을 닫으면 밥을 못먹지? 그냥 말하지 말고 식사나 해!”리고 말한다. 결국 그 아저씨들은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소주와 막걸리를 먹은 그 남자는 얼굴이 불그스레해진다. 그 입에서 나온 말 중에 “전주역을 걸어 갈 수 있죠?”라는 질문과, 혼잣말로 하는 “내가 도박을 끊었어야 하는데…”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식사를 잘 하시라”는 말을 하고, 재영이네 집을 나왔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다. 돈을 주어봤자,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듯 해서 칼국수만 사 주었는데 마음이 편치 못하다. 알콜중독자에게 만큼은 매우 단호하셨던 아버님의 생전의 모습이 떠올랐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푸셨지만, 유독 알콜중독자들에게는 단호하셨던 그 모습이 떠오르는 밤이다.
긴 이야기를 글로 쓰려니 어렵다.
함께 점심을 먹었던 교수 한 명과 카톡을 주고 받다가 이런 문자를 보낸다. “오늘 교수님의 모습은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래서 “헐”이라고 답했더니, 다시 “그런 지혜로움이 어떻게 나오지?”라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근데 정작 나의 마음속엔 어떤 불편함이 계속 남아 있다. 그 불편함은 “능력”의 부족함이 아니라, “믿음”의 부족함에서 비롯한다.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었네요.
사람에 대한 관심, 고맙습니다.
좀 더 넓은 마음로, 더 깊은 사랑으로
그들을 보듬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더 노력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