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祝福)”이란 단어의 뜻은 “행복을 빎. 또는 그 행복”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복(福)을 내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축복의 표현은 매우 다양합니다. 누군가를 “너를 축복한다”라고 표현하면, 복을 비는 것은 “나”이고, 복을 주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복을 받는 것은 “너”이다. “복”의 사전적 정의는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 “이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모든 표현이 단어의 뜻에 비추어 틀린 표현은 아니다.
- 너를 축복한다.
-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
- 네가 복 받기를 원한다.
- 저를 축복해 주세요. (인간이 인간에게 복을 빌어 달라는 뜻임)
- 저에게 복을 주옵소서. (하나님에게 복을 달라고 비는 표현임)
사람들은 “복”을 받기를 원하고, 누군가 자신을 위해 “축복”하기를 원한다. 세상에서 복을 받기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복을 원한다. 그러다 보니 “복”이라는 개념이 ‘개인의 안녕’과 ‘육신의 건강’, ‘물질의 축적’, ‘세상의 출세’ 등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은 축복이라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다.
생사화복은 인간에게 주어진 삶이다. 자신이 원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생사화복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인생여정이다. 오래살면 복이고, 건강하면 복일까? 짧게 살면 저주이고, 육신이 연약하면 저주일까? 나는 복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복이란 “한 개인이나 집단에게 주어지는 선한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의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그 과정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힘든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장차 그 과정들이 복된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가 온다. 그것이 진정한 복이 아닐까?
현재 받은 복이 자신의 삶에서 누리기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이 영원한 행복이라면 그것은 복이 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그렇지 못하고 그 행운과 행복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진정한 복이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세상의 물질이나 권세가 무조건 나쁘다라는 것은 아니다. 그 물질과 권세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게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개인이나 집단에서 주어진 선한 가치이고, 또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의 과정이었는지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면 답은 쉽게 얻어질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복은 재수나 행운과는 구별이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1~12절 말씀을 인용해 본다.
-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오늘 네잎 클로버(영어 : Shamrock, Clover, 에스페란토 : Trifolio)를 10개 뽑아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후 올라온 댓글을 보고 잠시 “축복”과 “복”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