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학 재시험

By | 2012년 12월 26일

어제는 생애주기 재시험 발표를 했다. 원래는 오늘 학생들의 시험 이후에 발표하려고 했는데, 학생대표들이 찾아왔다. “궁금해서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는 것이 학생들의 의견이라고 해서. 생애주기는 기초의학부분과 임상의학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기초의학부분은 바로 “발생학”이다. 학생들이 2학기가 되면 처음 접하는 과목이다. 1주일 가량의 여름방학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채 2학기 수업을 발생학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번 발생학 평가를 놓고 해부학교실 교수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발생학에 대한 학습은 새로운 “용어”와의 전쟁(?)이다. 해부학과 조직학, 생리학 시간에 전혀 들어보지 못한 용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니 학생들에게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전에 선배들에게도 어려웠겠지만, 미래의 후배들에게도 어려운 학문일 수가 있다. 용어 때문에. 그러나 우리가 의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학문이 용어와의 전쟁이 아니던가? 새로운 질병명과 그에 따른 수많은 용어들이 쏟아진다. 학생들에게 어려운 것은 자연스럽다. 더구나 발생학의 경우는 정지되어 있는 인체가 아니라 시기에 따라 발생과 발육, 그리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용어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존재하던 구조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 과정이 너무 빠르고 복잡하다.

이런 이유로 학생들에게 어려운 학문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의학을 다 배운 뒤에는 발생학 분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내가 굳이 발생학 총론을 몽땅 다 가르치겠다고 나선 것은 그 만큼 발생학에 대한 애착이 있다. 학생들이 가능한 쉽게 이할 수 있도록 강의안을 만들고, 키노트를 준비한다. 나의 발생학 강의 프리젠테이션은 나름대로 정성이 담겨 있다. 정성을 쏟은 만큼 학생들이 좀 더 쉽게 (상대적인 쉬움이니 절대로 쉽지 않은 분야이다)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거기에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한다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시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일부 학생들은 4명의 교수의 시험분량 중 시수가 적은 교수의 분야를 아예 공부하지 않고 포기해 버렸다. 이 부분은 교수들에게 분노를 만들어 냈다. 학문은 100점 만점에 20점은 쉽게 던져버리는 비지니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는 그렇게 꼼수를 부려서는 안된다. 힘든 분야일수록 그만큼 미리 준비하고 노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생들의 꼼수는 성적을 분석하면서 그대로 노출되고 만다. 가르치는 교수만큼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행히도 총론부분을 포기한 학생은 없다. 아무래도 시간수가 많으니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시험을 보여주는 의미는 “구제의 길”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한번 돌이켜 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냥 귀찮고 힘든 시간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찌질한 생각일 뿐이다. 자신이 본시험에서 써놓은 답안지를 한번 들여다 본다면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단답형 답안지에 비어진 칸들을 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잘못 가르친 것일까?’ ‘잘못 평가한 것일까?’하는 화살을 내 자신에게로 돌렸다가도, ‘학생들의 능력이 안되는 것일까?’ ‘학생들이 놀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까지 온통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찬다.

일단 3명의 교수의 시험범위에 대한 재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모든 시험이 끝나고 쉬고 싶겠지만, 다시금 자세를 가다듬는 시간으로 쓰이길 소망해 본다. 재시험을 통과한 일부 학생들도 스스로 1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반성해 보고 2학년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의전원에 들어오면 그냥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 스스로 무식함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올 때 그때가 행복한 시간들임을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1년간 고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1년간의 수고에 박수를 보내지만, 스스로 자신의 삶을 다시금 점검해 보는 시간들이었면 하는 것이다.

출처 : 발생학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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