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실습을 할 수 없는 보건계열학과 학생들을 위해 해부학실습을 해주자.”, “책에서만 배운 인체구조를 의대생들만 실습하는 시신을 보건계열 학생들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 “해부학실습을 위해 해외까지 가는 보건계열학생들의 번거러움을 우리가 해결해 주자.” 등 선한 생각을 가지고 의대 이외의 보건계열(paramedical) 학과생(간호대학, 작업치료학과, 물리치료학과, 등)들에게 해부학실습을 수년간 해오고 있다. 물론 이들이 하는 해부학실습은 의대생들이 하는 실습과는 다르다. 직접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해부되어 있는 시신을 통해 인체구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수준의 실습이다. 시간도 보통 3시간 정도만 소요된다.
이렇게 짧은 시간의 실습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실습을 중단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시간을 쪼개서 실습에 참여하고 있는 교수들의 상실감이 너무 크다. “실습을 해줄 이유가 없다.”라는 분위기이다. 이것은 교수들의 단순한 마음의 불편함이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외부대학 해부실습이 과연 교육학적으로 지속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해부학교실 교수들의 생각과 기대는 매우 단순하다. 학생들이 와서 “책에서 배웠던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는 것.”이다. 내가 볼 때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하니다. 그런데 지금의 실습과정을 살펴보면, 가장 기본적인 이 목적에 부합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해부실습대 위에 누워 계신 분들은 장차 환자들을 돌보게 될 학생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몸을 내어 주신 분들이다. 그 분들의 그 뜻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지금의 학생들의 태도는 기대 이하이다. 학생들을 보내는 학교의 태도도 문제이다. 그저 “우리 학생들도 전북의대 해부학교실에 가서 학생들이 실습을 한다.”라는 광고 혹은 홍보를 위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그것이 아니라고 항변을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들을 교육하고 있는 내 자신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해부학교실의 다른 교수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나는 이런 나의 생각을 해부학교실의 다른 교수들에게 의견으로 제시를 했다. 어떻게 결정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앞으로 실습을 계속한다고 해도 나는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 스스로 용납이 될 때까지는 그렇게 할 것이다. 오히려 해부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을 교육하는 워크숍을 다시 해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더 나은 미래가 되지 않을까?
2014년에 체질인류학회지에 실은 논문 “보건계열 학생들의 사람해부실습 교육 효과”
https://synapse.koreamed.org/pdf/10.11637/kjpa.2014.27.3.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