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성(二重性)이란 “하나의 사물에 겹쳐 있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성질.”을 말한다. 이 이중성은 양면성(兩面性)과는 차이가 있다. 양면성이란 “한 가지 사물에 속하여 있는 서로 맞서는 두 가지의 성질.”이란 뜻을 지녔다. 물론 이 두 단어가 때로는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왠지 이중성이란 단어의 어감이 더 좋지 못하다. 특히 사람에 대한 평가에서도 그렇다.
사람에 대한 양면성을 이야기할 때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 보다는 대립되는 성격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느긋한 성격을 가졌다고 보는데, 때론 급한 성격을 보여줄 때 사용된다. 따라서 꼭 부정적인 표현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어쩔 수 없는 유전학적 또는 본질적 양면성에 대하여 말할 때가 많다. 사람이 가진 선과 악의 속성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중성은 속 다르고 겉 다른 모습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그 어감은 매우 부정적이다. 특히 “이중성격”이란 표현을 사용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이중성을 표현할 때는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본질적인 특성이라기 보다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인격을 표현할 때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이야기할 때의 이중성의 어감은 매우 부정적이다. 즉, 사람의 악한 본질을 감추는 다른 모습을 밖으로 나타내서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성질이 바로 이중성이다. 가면을 쓴 것과 같다고 할까?
간혹 이상하게 주차를 해놓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에겐 전화번호를 확인해서 문자를 보낸다. 주차 위치를 바꾸어달라고 말이다. 그런 경우에 자동으로 전화번호가 저장이 되고, 카카오톡에 그 번호가 나오는데 카카오톡은 그 사람의 프로필이 보이도록 되어 있다. 서명글과 함께 말이다. 그런 경우에 “이중성”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카카오톡의 서명글만 보면 정말 세상을 멋지게 살아가는 것과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어제 점심 때부터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차량 두 대를 세울 수 있는 공간에 차를 가로 방향으로 세워놓은 차량이 있다. 아침에 출근할 때까지 그렇게 주차되어 있었다. 그 차량의 소유주는 이미 내 카카오톡에 올라와 있다. 오늘 다시 그 사람의 카카오톡에 들어가 보니, 인생을 고뇌하며 멋지게 살아가는 듯한 글귀를 써놓았다. 순간 “이중성”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전에 내 차량에 큰 흠집을 내고도 “다른 사람도 내 차를 찍어요!”라고 항변하던 그 목소리가 떠오른 것과 함께 말이다. 굳이 그 개인 한 사람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예를 들어보려고 적은 것일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하나이다. 우리 각자 안에 있는 “이중성”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 살펴보자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