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성은…

By | 2012년 12월 28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우리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한다. 더구나 부부지간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그 만큼 신중한 것이다. 어떤 엄마가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아들이 군대에 갈 때에 많은 기도를 했다. 네가 먼 도시로 나가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더 많은 기도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를 위한 기도는 너의 배우자에 대한 기도였다.”라고 말이다. 인생에서 배우자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함께 살아갈 시간들이 많음은 물론이거니와 누구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이유에서이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을 보는 눈이 더 성숙해지지만, 많은 젊은 사람들은 이성적 판단에 앞서 “사랑에 빠지고” 만다. 본성에 중심을 둔 사랑 앞에 그 사람을 제대로 볼(평가할) 수가 없다. 물론 이러한 본성은 인간의 생육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성적 판단이 꼭 옳은 결정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난 그런 생각을 한다. 배우자의 선택은 “뽑기 운”이라고. 주위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죽자살자 사랑하고 결혼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남남이 되어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서 단정하기 어렵지만, 이혼의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성”이지 않을까?

살다보니 그 사람의 인간성이 보이는 것이다. 연애하면서 감추어 두었던 “본성”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일부러 감추려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연애하며 사랑할 때는 그런 본성이 나타날 기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나서 밥먹고 커피마시고 드라이빙하고. 일부러 숨기지 않아도 될 환경들인 셈이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 살면서 우리는 크고 작은 “갈등”과 “위기” 상황을 만나게 된다. 갈등과 위기 상황에서 사람의 본성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사실 결혼전에서 이러한 본성을 확인할 기회는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사랑의 콩깍지가 붙으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원시뇌에 집중되어 있는 본성의 높은 활성도는 이성을 지배하는 대뇌피질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은 위기나 갈등 상황에서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겪은 후 우리는 그 사람을 다시금 판단하게 된다.

연애를 할 때 이런 것을 좀 더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남친의 아버지를 보는 것”과 “여친의 어머니”를 보는 것이다. 대개는 아들은 아빠를 닮고, 딸은 엄마를 닯는다. 특히 위기나 갈등 상황에서 보여주는 반응은 오랜 시간동안 훈련되어 왔기 때문에 거의 그대로 닮는다고 보면 된다. 이것을 극복하는 사람도 더러 있긴 하다. 나는 학생들이 연애를 시작하면 늘 하는 말이 있다. “결혼을 생각한다면 장모될 분을 미리 만나는 것이 좋다.”라고. 물론 여학생들에겐 “시아버지 될 사람을 미리 만나보는 것이 좋다. 가능하다면 어떻게 사는지 집에 가보는 것이 좋다.”라고 한다. 너무 계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인생이 달려있는 문제인데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어떤 면에서 뛰어나지만 어떤 면에서는 부족하다. 그리고 누구나 인격적으로 부족한 부분들도 있다. 그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인지, 본성에 충실(?)한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요즈음은 이런 측면보다는 “경제적 능력”나 “사회적 위치” 같은 것을 더 따진다. 물질이 부부지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된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경제적 능력도 중요하고, 사회적 지위도 중요하고, 지적 수준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분명히 있다. 경제적 능력도 사회적 위치도 어느 순간엔가 무너질 수 있지만, 사람의 본성과 노력은 그대로 남는다. 이런 위기에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위기 상황에서 어떤 이는 사나워지고, 어떤 이는 간사해 지고, 어떤 이는 강해진다.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반응은 본성과 훈련이다. 그 훈련은 대개 집안에서 오랜 시간동안 이루어진다. 그래서 집안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섣불리 판단해서도 안된다. 사람의 약점을 꼬집어 판단해서도 안된다. 인간은 불완전한 동물이다. 따라서 부부가 서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자라온 환경이 많은 부분을 지배한다고 할지라도 부부지간의 사랑과 노력은 많은 것들을 극복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부부지간에 얼마든지 갈등구조는 만들어질 수 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질 수는 있지만, 부부가 된 이상에는 그것은 부부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즉, 부부가 함께 해결해야 할 숙제인 셈이다. 부부가 시간이 지날수록 닮아가는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100% 만족하면 사는 부부가 얼마나 있겠는가?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서로를 보듬어 가면서 가는 것이다.

부부애는 이런 각자의 본성을 뛰어넘어야 한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결혼 이후에 삶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결혼서약을 지키기 위해 살아야 한다.”라고. 결혼서약에 맞추어 서로 노력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글을 2011년 3월에 적은 것을 나중에 발견했다. [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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