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사는 스승 사(師)를 사용한다. 판사(判事)나 검사(檢事)의 일 사(事)와도 다르다. 어떤 분야에서 일하는 기술자(技術士)나 기사(技士)의 선비 사(士)도 아니다. 이를테면, 변호사(辯護士)의 경우도 선비 사를 쓰고 있다. 직업에 스승 사(師)를 붙여주는 경우는 드물다. 예를 들어, 성직자인 목사(牧師)의 경우나 약사(藥師)와 교사(敎師)도 이에 해당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다만, 직업의 뒤에 사용하는 “사”자의 한자가 다른 이유는 아마도 사회적 통념에서 오는 직업의 가치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의 본질이 ‘사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치료하고,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일을 하기에 선비 사 대신에 스승 사를 붙여준 것이다. 이것은 이런 직업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반영한다.
따라서 직업에 스승 사(師)가 들어가는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의 삶은 달라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사회에는 안타깝지만 그렇지 못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내가 가르치는 의대생들이 나중에 의사로서 살아가게 되는데, 醫師(의사)로서 살아갈 준비를 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醫士(의사)로서 살아가고자 준비하는 모습으로 보일 때가 있어서 슬플 때가 있다. 의학(醫學)이 아닌 의술(醫術) 정도 배워서 그저 먹고 사는 직업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학생들을 발견하게 되고, 또 의사들도 보게 된다.
스승 사(師)가 붙는 직업군에 대한 사회적 기대 때문인지,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는 사람들의 더 많은 지탄을 받게 된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스승 사(師)가 붙은 직업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 그들을 비난하지만, 한편으로 아직도 그들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醫士(의사)가 아닌 醫師(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