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반적으로 ‘호로자식’이라는 말은 “호래자식”이 맞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배운 데 없이 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오늘 학교근처 식당에서 교수 셋이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중 한명이 두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목사관련 이야기에서 ‘호로자식’과 ‘사기꾼’이란 단어가 나왔다.
‘호로자식’에 관련된 이야기의 내막은 이렇다. 그 교수의 동생이 병원을 개원하게 되어서 ‘개원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한쪽에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고, 원장의 아버지(그 교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는 몸이 불편해서 예배드리는 장소에도 못가고, 음식을 차려놓은 장소의 입구에서 휠체어를 탄 상태로 대기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는 그 아버지 휠체어 옆을 지나, 상석(?)으로 보이는 곳으로 가더니 혼자서 먼저 밥을 먹기 시작하더란다.
그 교수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목사가 교회에서는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세상에서는 어른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예의를 갖추는 것이 맞다고 본다. 더구나 휠체어에 불편하게 앉아 계시는 개원한 병원장의 아버님이 그렇게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모든 목사가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그 쉐이(순화된 단어로 바꿈)는 호로자식이다.”라고 말이다.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이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교회의 수많은 목사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며 살아간다. 인격적으로 뛰어난 목사들도 많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교회를 보면 도저히 성직자로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신학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목사를 한다. 그렇다보니 정말 별의별 케이스들이 발생한다.
동네 양아치들이나 들었던 말인 호로자식이 이제 성직자라고 하는 목사도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경우들이 발생하니 정말 말이 나오질 않는다. 교회에서 성직자로 떠받혀지고, 대접받는데만 익숙해진 일부 목사들의 모습이겠지만 정말 씁쓸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오랜 만에 우럭탕을 맛있게 먹고 연구실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눈 대화가 오후 내내 소화불량을 가져왔다.
호로자식, 이 말 자체도 오랜 만에 듣는다. 내가 그런 말을 꺼냈다면, “개호로새끼”이라고 했을 듯 하다.
직책이나 자리에 상관없이 ‘잘못된 일’입니다.
케이프타운에서 저와 아내가 당한 일이 생각 나네요.
생각하기도 싫은 말씀하신 꼭 그자리에 있는 사람에게서요.
왜들 그러는지요.
기본적인 인격을 갖추지 못한 채, 목사라는 직함을 덮썩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기에 잘못된 교회관과, 목사직분에 대한 잘못된 이해부족은
지금의 한국의 목사들의 모습을 만들어냈다고 보여집니다.
사실 많은 목사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복음에 대한 열정 하나로…
존경할만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꼭 미꾸라지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전체를 욕먹게 하는 것 같습니다.
선배교수로 부터 저 이야기를 듣는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