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기기준.

By | 2019년 9월 28일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두가지 기준을 갖는다. 하나는 자신은 “중립적(neutral)이다”라는 것과, 또하나는 “정상적(normal)이다”라는 것이다. 이 두가지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한 후에 세상과 사물을 보게 된다. 그러나 불안전한 인간은 절대로 중립적일 수도, 정상일 수도 없다. 중립적인 것과 비중립적(non-neutral)인 것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것이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려는 비정상적(abnormal)인 자신의 삶을 가꾸어가는 과정이 인생이 아닐까?

요즈음 페이스북 속에 교회커뮤니티에서 보여주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 물론 내 자신도 절대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스스로 “나는 중립적이지 못하다.”라고 공표를 해놓았다. 페이스북에 글을 쓰는 사람이 가진 성향을 보면 개벽적이든지, 아니면 보수적이든지, 극단적으로 가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분명히 한쪽에 치우치게 되어있음을 보게 된다. 또 이 둘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도 있는데, 그것마져도 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커뮤니티에서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 그렇다면 침묵은 중립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침묵 속에서도 그들은 한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다. 침묵하는 다수는 스스로 자신은 중립적이기 때문에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위할 수 있다. 그것이 중립적인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저 방관하는 자에 불과하다. 그런 커뮤니티의 구성원으로 적합하지 못한 모습이다.

요즈음 페이스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이 세상의 기준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기준으로 보고, 자신의 기준으로 듣고,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 세상의 모든 판단 잣대가 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따라서 우리 인간에게는 “reference(참고문헌, 기준, 준거)”가 필요하다.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연구가 객관성을 지녔는가를 말하기 위해 수많은 참고문헌을 인용하고 밝힌다.

인간의 삶에서도 참고문헌이나 준거가 필요하다. 나는 그 준거가 “성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속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사도들의 복음전파 속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 인간의 죄성에 대하여 보게 된다. 아마도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부족하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자면, 과연 우리시대의 기독교인들이 과연 성경을 기준삼아서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보면, 성경의 말씀을 스스로의 기준에 맞추어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이 성경이 아닌,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일부는 DNA의 영향으로)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절대로 중립적이지고, 정상적이지도 않은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평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다들 자신은 중립적이고, 자신은 정상적이라고 소리치고 있으니, 그 얼마나 우스운 모양인가?

따라서 내 자신도 이런 인간의 삶의 모습에서 벗어나려고 스스로 노력 중에 있다. 내 블로그에서 보듯이 “지.정.의 균형잡힌 삶”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늘 내 자신의 모습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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