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검색 중 알게 된 또다른 “ㄱ”자 교회인 두동교회, 오후 늦은 시간이었지만 가보기로 했다. 비도 내리고, 또 도착하면 어두워질 것 같았지만 한번 가보기로 했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가지 않고, 여산까지 가버렸다. 목적지보다 더 멀어지고 말았다. 덕분에 처음 가보는 길도 달렸고, 지난번 나바위성당을 가기 위해 갔던 길도 다시 가보게 되었다.
옛건물 앞에 이렇게 두동교회를 소개하는 팻말이 서 있다.
“이 건물은 1929년에 건립된(설립, 1923년) 두동교회 초기 본당으로 기독교 전파과정에서 남녀유별의 관습이 남아 있다. 특히 한국의 토착성과 자율성을 강조한, 일종의 현지 자립형 선교라 할 수 있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통하여 기독교와 한국의 전통을 잘 살렸으며, 남녀유별적인 유교전통이 막 무너져가는 1920년대에 오히려 “ㄱ”자형 예배당을 통해 남녀유별의 전통을 보여주면서 남녀 모두에게 복음을 전파하려고 했던 독창성이 돋보인다 할 수 있다. 건물의 한ㅋ족은 남자석, 다른 한쪽은 여자석으로 구분하였고, 중앙에는 휘장이 처져 남녀가 볼 수 없게 만들었으며 모서리에는 강단을 설치하였다. 현재 “ㄱ”자형 에배당은 두동교회와 금산교회에 남아있는데, 한국기독교 전파과정의 이해와 교회 건축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비가 오는지라 옛 건물의 밖과 안을 보고, 새로 지어진 현대식 교회건물 안에도 잠깐 들어가 본 후에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큰 도로에 들어서자 이미 해가 넘어가 버렸고, 빗줄기도 훨씬 굵어졌다. 역시 밤길(저녁 때인데도 이미 밤같이 어두운) 운전은 피로가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적지를 와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날이다.
유교문화 안에 들어온 이상한(?) 서양종교가 당시에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을까? 먼 이국 땅에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온 선교사들은 당시에 한국인의 삶들을 어떤 눈을 보았을까? 그런 상황 속에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갔다는 사실 이외에 무엇을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거의 100년이 된 교회네요.
말씀대로 당시에는 얼마나 신기한 종교였을까요?
본래 있던 건물과 새로 지은 현대식 교회와 조화를 이루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 저의 생각입니다.
100년의 역사가 저렇게 남아 있다는 것 자체로도 신기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곳을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조만간에 기회가 되면 그 교회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긴 역사가 있는 교회에서 예배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겠네요.
이번 한 주 잘 보내십시오
조만간에 한번 가볼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너희교회, 우리교회…로 나뉘어 버린 현대교회의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이제는 이땅에 있는 교회는 다 똑같은 하나의 교회임을 깨닫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그날을 소망해 봅니다.
단지 지역이 떨어져 있어서 가보지 못하는…것 이외에는 말입니다.
부자교회와 가난한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로서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그런 교회이길 소망해 보는 것입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