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바울교회 페이스북에 올라온 어떤 포스팅에 대하여 “교회에 꼭 목사가 필요하냐?”라는 취지의 댓글을 쓴 적이 있다. 이 댓글이 캡쳐되어서 어떤 사람들이 돌리기 시작했다. “김형태 장로는 ‘목사가 필요없다’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다.”라는 낙인과 함께 이 캡쳐된 글은 이쪽 저쪽 진영에 뿌려졌다. 나의 이 댓글은 처음 포스팅한 원글에 대한 이해없이 단순히 캡쳐된 댓글만으로도 그리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지만, 일반 사람들의 정서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아침에 식사를 하면서 아내가 아이패드에서 “평신도교회”를 검색해서 보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는 시점까지 식사를 하면서 계속 자료들을 뒤지고 있다. 아마도 지금 이런 모습은 나중에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료들을 찾고 있는 지금의 심정은 착찹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런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기대감을 갖게 한다. 물론 이 글을 보고 “김형태 장로가 평신도교회를 세우려고 한다.”라는 소문이 금새 바울교회 내에 퍼질 것으로 예상이 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땅에 있는 어떤 형태의 교회이든지 간에 완벽한 교회는 없다. 평신도교회도 어차피 교회문제의 중심에 있는 목회자를 제외하였을 뿐, 인간의 죄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시도해 보는 실험적 교회의 한 형태일 뿐이다. 자료를 다 뒤져보지는 않았지만, 평신도교회의 한계는 누구나 예상해볼 수 있다. 따라서 평신도교회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이 주제를 써내면서 나와 아내가 “교회”에 대하여 생각할 뿐 아니라, 레위인, 사도, 사제, 목사 등에 대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것들을 더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얻어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현재의 교회시스템에 젖어살던 잘못에 대한 회개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잘못된 교회관과 목사관이 지금의 한국교회를 만들고 말았다. 목사의 신격화, 목사에 의한 교회의 사유화, 제왕적 목회 등이 용인되는 한국교회의 비참한 모습 속에서 다시금 교회의 본질을 되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서 폭넓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시간도 감사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