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합주의

By | 2020년 5월 31일

“개신교가 가톨릭과 함께 기독교를 대표하기에 서로 연합하고 통합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는 취지의 말에 대하여 “김형태 장로는 혼합주의에 빠진 것 같다.”라고 반응하는 우리 나이대 목사의 반응에 많이 놀랐다. 그것이 작년 가을이다. 그 후에 내가 다니던 교회에 많은 일이 있었고, 그 과정에 교회에 대하여, 한국교회에 대하여, 기독교에 대하여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혼합주의의 사전적 의미(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는 다음과 같다.

혼합주의[ Syncretism, 混合主義)

  • 서로 다른 원리 위에 서 있는 사상을 무비판적으로 혼합하는 것을 뜻한다.
  • 역사적으로는 헬레니즘 시대에 발생한 여러 가지 종교상의 관념이나 의식의 혼합을 말한다.

현대인에게 기독교는 “교회”라는 건물을 중심으로 “교회”를 생각한다. 과연 교회가 그런 것일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과 십자가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과 승천 이후에 제자들과 사도들에 의해 전해지는 새로운 기독교의 시작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쉽게 답이 나올 듯하다.

창조주 하나님의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과 그들의 역사 속에서 그의 실존과 역사하심을 통해 창조주를 기억하며 살게 하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이 땅에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은 인간사랑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한 순종, 그리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새로운 계명을 우리는 기억하며 실천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본질이 아닐까?

제자와 사도들의 계승자라고 하면서 스스로 종교적 사제가 되고, 그 사제들을 위한 종교적 시스템은 종교적 타락을 가져왔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며 종교개혁을 했다는 기독교마져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아니, 더 추잡한 종교인이 되었다. 한국의 개신교는 기독교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샤마니즘에 가까운, 아니 많은 부분에서 샤마니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세상이 기독교를 걱정하는 단계에 와 있다. 스스로 혼합주의를 경계라고 말하는, 그것을 말할 만큼의 “기독교의 본질”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이미 세속화되어 버린 종교가 스스로 자신의 본질이 기독교 원리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자신이 제대로 본질에 서있지 못하면서 혼합주의네 마네할 수준은 아닌 듯하다.

사실 개신교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개신교는 가톨릭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가톨릭을 배제하고 마치 타락한 종교를 보듯이 하는 자세는 좋지 않다. 사실 가톨릭의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는 개신교는 절대로 바르게 나아갈 수 없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든 기독교(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동방정교회, 등)가 일치할 수 있는 길들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신교만이 제대로 된 기독교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톨릭, 성공회, 동방정교회, 등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며,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는 같은 종교이다. 자신들의 아집과 독선으로 그들과 연합하지 않는다면 개신교 자체가 이상한 종교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개신교 안에 이단적인 요소는 없는지 살피고, 기독교의 본질을 되찾는데 힘을 써야 한다.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라는 말을 세상과 등지거나 담을 쌓고 사는 잘못을 더 이상 저질러서는 안된다. 세상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기독교이어야 한다. 교회 건물 안으로 더 이상 숨어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다. 그들과 연합하는 일은 “혼합주의”라는 말로 비방하며 스스로의 담벼락을 높게 쌓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는 35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 이후에 책 한권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의 제목이 “천주교가 이단인 7가지 이유”였던 것 같다. 그 한권의 책이 가톨릭에 대한 왜곡된 사상을 갖게 만들었다. 기독교를 균형있게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좀 더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 중에 있다.

주일 아침에 이렇게 몇자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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