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모든 사람들에게 비춘다. 어두움도 누구나 어두움 속에 있게 된다. 어느 누가 보아도 빛이요, 어두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빛인데, 그것이 어두움이 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같은 어두움을 우리는 어두움이라고 한다.
선과 악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이이게 선할 때 우리는 그것을 “선(善)”이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악한 것을 우리는 “악(惡)”이라고 정의한다. 누군가에게는 선인데, 누군가에게 악이라면 그것은 선이 아니다. 악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사회에서 보여주는 선과 악의 모습은 이런 기준을 벗어나는 선과 악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우리 인생은 선과 악의 경계선상에서 살아간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따라서 자신의 기준에 따라 선과 악을 구분하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불안전하고 이기적인 인간은 선과 악을 구분하려고 하지만 늘 자신의 입장에서 선과 악을 보게 된다. 2년 전부터 나는 교회 안에서 잘못된 것에 대하여 지적하고 그것을 고쳐가기 위해 목소리를 내었었다.
사회적인 기준으로 봐서도 잘못된 것에 대하여 “잘못”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것이 악이다.”라고 말을 해도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교회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추악함에 대하여서 그것이 악이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문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그런데 완전하게 해결되지 못한채 봉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암덩어리를 제거하고, 그 주변에 퍼져있는 전이된 조직을 다 제거한 후에 봉합을 해야 하는데 암덩어리만 제거했으니 덮어버리자라고 한 셈이다.
선과 악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이 고려된, 즉 이기적인 판단하에 이루어진 문제해결은 결국 미봉책이요, 다시금 악의 뿌리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우리사회의 곳곳에서 이런 모습은 존재한다. 정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선인데, 누군가에겐 악이다. 즉, 그것은 절대로 선이 아니다.
2021년 새해 첫 주일 아침에 선과 악에 대하여 이렇게 적어둔다.
우리 삶에서 부분적인 선이나 주관적인 선은 선이 아니다. 선은 모든 이에게 선할 때 그것을 선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빛’이 누구에게나 ‘밝음’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