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교시절을 빼고 교수로서 의대생들을 가르친 세월이 벌써 26년째이다. 짧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수많은 의대생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해부학을 가르쳤다. 내가 해부학 교수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문뜩 이런 질문을 한다.
“의대생들은 어때요?”
이 질문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폭이 넓은 질문인지 알고 하는 것인지, 모르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하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는 없지만 불쑥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많다. 도대체 무슨 대답을 듣고자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대답이 하나 있다.
“참 괜찮은 녀석들입니다.”
이것이 늘 내가 해오던 대답이었다. 교수가 막 되었던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사실 의전원 시절에 이 대답이 바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의전원 시절에도 의대생들은 늘 괜찮은 녀석들이었다.
사실, 의대에 들어온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때 공부 좀 했던 친구들이다.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 할 수 있지만, 그 만큼 성실함도 한 몫을 한다. 의대교수들은 의대생들 중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좋아한다. 이유는 ‘성적은 곧 성실함이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늘 성적이 좋지 못한 의대생들에게 마음이 가 있다. 물론 학생들의 유급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해부학”이란 과목 때문에 나의 이런 마음과 현실은 늘 상충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성적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한번 하려고 한다.
아무튼 내가 의대생들을 괜찮은 녀석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표현하기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정리를 하고 싶다. 의대생은 의사로 만들어져가는 과정 중에 있다. 그 과정을 위해 태어난 머리도 좋아야 하고, 거기에 걸맞는 노력의 과정들이 있었다. 그리고 의대생활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 과정을 버텨가는 과정 중에서 그들이 의대에 들어오기 전까지의 삶의 모습들이 투영되기도 하고, 또 교수나 선배들의 모습들을 통해 그들이 의사로서 만들어져 가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 나의 예상을 (아니 일반적인 예상을 의미한다)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간혹 ‘너는 왜 의대를 왔니?’라고 물어보고 싶은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그런 학생들도 서서히 의사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본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내 자신을 돌아다 본다. 과연 나는 의대생들의 삶에 어떤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자문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